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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복잡해 못 타간 돈 ‘수 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14년 제자리

입력 | 2023-09-20 00:00:00

(위 사진)최종구 금융위원장과 '피겨여왕' 김연아가 3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보험개발원에서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접목된 실손의료보험 간편청구 시연에 참여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향후 실손의료보험금 청구 방식을 금융소비자가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원스톱으로 보험 청구를 하거나, 병원이 보험사로 의료 정보를 직접 보내는 방식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2018.7.31/뉴스1 (아래 사진)보건의약 4개 단체(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약사회) 관계자들이 1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실손보험청구 간소화법을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9.13/뉴스1


국민건강보험은 병원에서 진료만 받으면 보험금이 자동으로 청구된다. 하지만 4000만 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의 가입자들은 일일이 종이 서류를 챙겨야 한다. 병원에 직접 방문해 영수증과 진단서, 진료비 세부내역서 등을 뗀 뒤 보험사에 팩스나 우편으로 보내야 한다. 서류를 빠뜨려 병원을 다시 찾는 일도 많다. 모바일 앱도 있지만 종이 서류를 사진으로 찍어 전송하는 방식일 뿐이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걸 하는 디지털시대에 종이 서류를 통한 보험금 청구가 연간 1억 건이나 되니 이런 낭비도 없다.

금융소비자연맹 등 소비자단체의 설문에 따르면 절차가 번거로워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절반에 가깝다. 2021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가입자가 청구하지 않은 실손보험금은 8282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불편과 낭비를 막자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보험업법 일부 개정안)’이 추진돼 왔지만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올해 6월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었지만, 이번엔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일부 의원의 반대와 여야 정쟁에 따른 국회 파행으로 제동이 걸렸다. 이대로라면 해를 넘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손보험 청구를 간소화하자는 요구는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개선을 권고한 게 벌써 2009년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선 여야 후보 모두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난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진행한 국민 설문조사에선 새 정부가 가장 먼저 시행해야 할 생활밀착형 과제 1순위로 꼽혔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가 의료계 등의 눈치를 보며 법안 처리를 미루는 것은 심각한 직무 유기다.

의료계는 이 법안이 의료정보 열람과 제공을 엄격히 제한하는 의료법 등과 충돌한다며 반대한다. 하지만 전산화를 해도 환자의 요청과 동의가 필요하니 문제가 없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의료계는 개인정보 유출도 우려하지만 종이 서류를 전산 문서로 바꾼다고 유출 가능성이 커진다고 보긴 어렵다. 일각에선 의료계가 진짜 우려하는 것은 개인정보 유출이 아니라 비급여 정보의 노출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14년 동안 국회가 입법을 모르쇠 하면서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간 보험금이 단순 계산으로도 수조 원이나 된다. 더 이상은 국민들의 불편과 손해를 내버려 둬선 안 된다. 문제가 있으면 하위 법령과 법 시행 과정에서 보완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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