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깡통 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100일을 맞아 열린 제대로 된 특별법 개정과 피해지원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3.9.8 뉴스1
전세사기를 당한 사회 초년생 피해자들이 우울증과 공황장애, 수면 장애 등 심각한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천정배 전 법무장관이 이끄는 호남100년살림민심센터는 20일 전세사기 피해 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광주시 광산구 한 빌라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센터는 이 피해를 다가구주택 관련 법과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사기 범죄에 서민과 대학생, 청년, 신혼부부, 사회 초년생 등이 희생당한 전형적인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했다.
김모씨(34)는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하고 광주시 첨단단지의 한 향수 제조회사에 재취업해 어릴적부터 꿈 꾸어 왔던 조향사로의 새 인생을 시작하려는 찰나에 전세사기를 당하게 됐다.
김씨는 자신이 모은 300만원과 청년전세자금대출 1억2000만원으로 전세보증금을 마련했다. 하지만 한 푼도 되돌려 받지 못해 매월 원금 200만원과 60만원의 이자를 납부하는데 월급만으로는 감당이 안돼 주말까지도 식당에서 서빙 알바를 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그는 “사기 피해를 당하면서 수면장애는 물론 우울증, 공황장애 증상까지 겪고 있다”면서 “제게 편취한 돈으로 자기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만 하면 지금도 너무 죽고 싶은 마음뿐이다”고 하소연하며 경찰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모씨(26·여)는 월세 부담이 아까워 여수에 거주하는 부모님과 함께 모은 1000만원에 9000만원의 청년전세자금대출을 받아 전세 보증금을 마련해 지난해 6월 이 빌라에 입주했다.
전세 피해자들은 광주경찰청으로부터 범죄 피해자의 신체·심리·경제적 피해 상황 등을 가해자 구속영장 발부나 양형 등 형사절차에 반영하는 ‘범죄피해평가’에 선정돼 심리 상담 지원을 받았다.
광주 광산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광주지검은 전세사기 주모자 김모씨(여)에 대해 19일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 빌라와 같은 다가구주택은 건물주는 한 명이고 각 호실별로 세대주들이 살고 있는 단독주택으로 분류돼 세대별 등기가 불가능하다. 새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먼저 들어 온 세입자들의 차입 및 보증금 등 임대차 정보를 알 수 없어 전세사기 피해가 집중됐다.
천정배 호남100년살림센터이사장은 “이번 전세사기 사건은 허점이 많은 법과 제도가 방치돼 피해가 집중 발생한 사회적 재난의 전형”이라며 “정부는 뒤늦게나마 이뤄진 보완 입법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면밀히 지켜보고, 광주시는 청년층 피해자들에 대한 심리 치료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도 다가구주택세입자들의 전세사기 피해 예방을 위해 올해 주택임대차법에 임대인의 정보제시 의무를 신설하는 한편 공인중개사도 임대차 중개시 임대인의 동의 없이도 다가구주택 세입자의 보증금 현황 등을 열람하여 설명하도록 하는 공인중개사법을 개정했다.
(광주=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