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UNIST 총장
<편집자 주> 연구중심대학의 현재와 미래를 다루는 이용훈 UNIST(울산과학기술원) 총장의 글을 3회에 걸쳐 싣는다. 이 총장은 30년간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 재직했고, 2019년부턴 UNIST 총장을 맡아 국내 과학기술원의 성장과 발전을 이끌어왔다. 각국이 기술 패권 확보에 분투하는 가운데,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의 존재 여부가 국가의 역량을 좌우하고 있다. 우리 대학들의 경쟁력 확보가 절실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글은 ‘왜 연구중심대학인가’, ‘세계의 연구중심대학’, ‘세계적 연구중심대학 육성을 위한 제언’ 순으로 이어진다.
이용훈 UNIST 총장
연구중심대학에서 시작된 혁신은 우리 삶을 바꿔왔다. 모더나를 창업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앞장선 MIT 로버트 랭어 교수가 대표 사례다. 앞서 3차 산업혁명의 시작점에는 인터넷의 효시가 된 알파넷 개발자인 UCLA 레너드 클라인록 교수가 있었다. 인공지능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은 딥러닝 기술을 제창한 토론토대학 제프리 힌턴 교수의 영향이 컸다. 세계적 연구중심대학들은 혁신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다. 이들은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10년 너머의 미래를 준비한다. 누구보다 먼저 준비하기에, 코로나19와 같은 위기를 기회로 바꿔내는 힘을 갖고 있다. 기술 패권을 노리는 이들이 현대 과학기술의 성장을 견인하는 연구중심대학의 육성에 집중하는 이유다.
우리도 1970년 KAIST의 설립을 시작으로 연구중심대학 육성에 힘써온 역사가 있다. 산업화 시대를 이끌 인재를 공급하고, 국가의 미래를 준비해온 우리 대학의 역할이 없었다면 반도체, 통신 등 대한민국 선도 산업의 눈부신 오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부 R&D 투자 규모는 세계 5위 수준이다. GDP 대비 연구개발 예산 비율도 1위 이스라엘을 바짝 뒤쫓고 있다. 과거 연구중심대학의 태동기와 비교하면 규모 면에서 크게 성장했다.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원을 집중해온 결과다. 최근엔 급증한 R&D 예산의 관리 효율을 높이려는 정책 당국의 노력도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 R&D 투자의 근원적 중요성이 훼손되어선 안 된다는 걱정도 유념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 대학들의 역량이다. 세계대학 순위에서 국내 대학들은 순위가 뒤처져 있어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단적으로 양대 평가인 THE, QS의 최근 결과에서 국내 대학은 100위 내에 각각 3개, 5개만 이름을 올렸다. 가장 높은 순위의 서울대는 QS 41위, THE 56위에 머물렀다. HCR 수, SCIE 논문 게재 및 피인용 수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 역량은 12∼17위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된다.
세계 2∼5위 수준의 정부 연구개발 투자에 비춰보면 아쉬운 결과다. 왜 우리의 대학들은 세계를 선도하는 대학의 목록에 들지 못하는가. 결국 이는 산업화 시대에 형성된 대학의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이 종언을 고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의 연구중심대학은 선진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고 이를 산업계에 체화하는 데 있어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제 그 이상으로 넘어가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이용훈 UNIST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