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명절인 국경절 연휴(9월 29일∼10월 6일)를 앞둔 17일 수도 베이징 차오양구 화웨이 매장에서 시민들이 최근 출시된 최신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를 살펴보고 있다. 매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화웨이를 사줘야 한다”며 ‘애국 소비’를 강조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국영기업에 다닌다는 30대 여성 천(陳)모 씨는 “그동안 미국 애플의 아이폰을 썼는데 최근 이래저래 눈치가 많이 보인다. 마침 화웨이에서 신제품이 나왔다고 해서 살펴보고 가능하면 바꾸려 한다”고 했다. 천 씨에게 ‘왜 눈치가 보이느냐’ ‘직장에서 아이폰을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느냐’고 물었지만 답을 하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또 다른 고객 왕(王)모 씨는 “더 많은 중국인이 화웨이폰을 구입해 화웨이가 미국의 불합리한 제재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도와줘야 한다.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특히 최근 화웨이가 5세대(5G)용 7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반도체 칩을 탑재한 신제품 ‘메이트 60’과 ‘메이트 60 프로’를 출시하면서 왕 씨처럼 소위 ‘애국 소비’에 나서겠다는 중국인이 적지 않다.》
여론조사 75% “아이폰 대신 화웨이”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조만간 화웨이가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 업체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20일 경제매체 화얼제젠원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4∼10일) 화웨이의 점유율은 17.0%로 1위 룽야오(17.2%)에 불과 0.2%포인트에 뒤졌다. 최근 ‘메이트 60’에 쏠리는 관심과 인기를 고려하면 셋째 주(11∼17일) 점유율은 화웨이가 룽야오를 추월해 1위에 오를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이 매체는 추정했다.
또 다른 경제매체 차이신 또한 올해 화웨이 스마트폰 총출하량이 지난해보다 65% 늘어난 3800만 대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내년에는 화웨이가 최소 6000만 대를 출하해 전년 대비 증감률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휴대폰 브랜드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해 전체 화웨이의 휴대전화 출하량은 2800만 대였으며 모두 4G 휴대폰이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화웨이 창업자 “美 제재는 동기부여”
런 창업자의 딸이며 모친의 성을 따른 멍완저우(孟晚舟) 화웨이 순회회장 또한 2018년 12월 캐나다에서 미국의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1029일간 억류됐던 그가 2021년 9월 광둥성 선전공항으로 귀국했을 때 관영 언론은 멍 회장을 ‘미중 무역 분쟁의 순교자’라며 홍보 도구로 적극 활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화웨이는 중국 반도체기업 SMIC가 자체 생산했다고 주장하는 최신식 7nm 반도체를 탑재한 신제품을 출시했다. 당국과 관영 언론은 화웨이 스마트폰을 미국과의 패권 갈등에 사용할 ‘선전 도구’로 쓰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관영 언론은 연일 화웨이 신제품을 칭송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최근 환추시보는 “주요 도시의 대형 화웨이 매장 앞에는 ‘메이트 60 프로’를 구매하려는 고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웃돈을 주고 판매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전했다
중앙부처 공무원, 국영기업 직원에게 아이폰 사용 금지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 중국 당국 또한 금지령 대상을 확대하며 화웨이 지원에 열심이다. 웨이보 등에는 ‘이제 지방정부에서도 공무원들이 회의 때 아이폰을 들고 들어올 수 없다’ ‘지방정부에서도 아이폰 사용 금지에 관한 구두 지시가 내려졌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중국 최대 통신사 차이나모바일이 아이폰 판매를 중단할 것이란 소문도 등장했다.
20일 경제매체 디이차이징(第一財經)에 따르면 런 창업자는 국제 대학생 프로그래밍 대회(ICPC)에 참가한 대학생과 교수 등 코치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의 제재는 압력이자 동기 부여”라고 말했다. 특히 ‘애플 팬이냐’는 물음에 “배우고 비교할 기회를 준 교사가 있어 매우 기쁘다”면서 “그런 관점에서 나는 애플 팬”이라고 말했다.
젊은층 ‘아이폰 사랑’ 여전
17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애플 매장에서 시민들이 맥북, 아이패드, 아이폰 등을 구경하고 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16일 홍콩 밍(明)보에 따르면 아이폰 15 프로와 아이폰 15 프로맥스는 이날부터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티몰에서 공식 예약 판매가 시작됐다. 두 모델 모두 판매 시작 1분 만에 품절됐다. 애플 공식 홈페이지 또한 판매 개시 10분 만에 접속자가 몰려 다운됐다. 특히 판매 시작 이후 30분 이내에 첫날 현장 품목은 모두 예약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커머스 플랫폼 ‘메이퇀 와이마이’에서는 예약 판매 30분 만에 판매량이 2억 위안(약 366억 원)을 돌파했다.
애플은 아이폰 15 발매 이전에도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시장 조사회사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10∼12월) 애플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22%로 오포, 비보, 오너, 샤오미 등을 모두 제쳤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 후 3년간 ‘제로 코로나’ 정책을 겪은 중국인들의 심리가 크게 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단 한 명의 확진자만 나와도 해당 구역 전체를 봉쇄하는 ‘제로 코로나’로 상당한 불편을 겪은 중국인들이 ‘국가’보다 ‘개인’을 중시하게 됐다는 것이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당국의 미흡한 일처리가 국가를 바라보는 중국인의 시각을 바꿔놓았다는 해석도 있다. 당시 중국에서는 강력한 주거지 봉쇄 여파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사회적 약자가 대거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의약품 및 병상 부족이 일상이었고, 사망자의 시신을 처리할 화장터가 부족해 시신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는 일도 잦았다.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중국공산당과 중앙정부에 대한 신뢰가 크게 하락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 6월 청년실업률(16∼24세)이 역대 최고 수준인 21.3%까지 치솟으며 취업난까지 가중되면서 2030세대의 애국 소비 동력이 많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