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째 재판까지 합치면 60% 넘어 기업 리스크 커져 2차 피해 위험
13일 SK하이닉스의 반도체 D램 관련 핵심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 등을 받는 협력업체 임직원들이 1심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21년 1월 재판에 넘겨진 이후 2년 8개월 만이다. 형사 사건의 경우 1심 판결이 나오는 데 평균 5∼8개월이 걸린다. 업계에서는 기술 유출이라는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재판이 너무 길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 25-3부는 해당 사건 기소 이후 재판부 구성이 세 차례나 바뀌었다.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법원 1심 재판 10건 중 6건은 1년을 넘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 판단이 늦어지면 피해 기업들은 관련 대응이 늦어져 2차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첨단 기술 확보 전쟁이 치열하게 펼쳐지는데 국내 사법 시스템이 이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0일 양향자 한국의희망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관련 법원 미제 사건 현황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79명 중 35명(44.3%)은 기소 후 2년이 초과된 것으로 나타났다. 1년이 초과된 13명(16.5%)까지 합하면 60%가 넘는다. 심리 기간이 2년이 넘으면 법원에서는 ‘장기 미제’로 분류한다. 심리 기간 2년을 초과한 피고인 수는 2021년 말 12명에서 지난해 말 19명, 올해 6월 35명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기준을 ‘1년 초과’로 바꿨을 때도 2021년 말 28명에서 올해 6월 48명으로 20명(71.4%) 증가했다.
“기술유출 재판, 3심까지 5년… 노하우 뺏기고 손배청구 차질”
[글로벌 첨단기술 전쟁]
기술유출 재판 44%, 1심만 3년째
‘SK 반도체’ 32개월만에 1심 선고
아직 ‘국제대응-손배’ 절차 못밟아
기술유출 재판 44%, 1심만 3년째
‘SK 반도체’ 32개월만에 1심 선고
아직 ‘국제대응-손배’ 절차 못밟아
13일 SK하이닉스의 D램 관련 기술 유출 혐의를 받는 임모 씨 등이 1심에서 징역형을 받은 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술 유출 범죄는 적발도 어렵지만, 다행히 범인을 찾더라도 이미 천문학적 규모의 피해를 입은 뒤인 경우가 많다. 국가정보원이 2018∼2022년 5년간 적발한 산업기술 유출 사건은 93건, 피해액만 25조 원으로 추산된다.
올해 6월 파장을 일으킨 ‘삼성 복제 공장’ 시도 사건 또한 업계에서는 이미 재판 장기화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중국에 삼성과 똑같은 공장을 지으려다 6월 구속 기소된 삼성전자 상무 출신 최모 씨는 최근 삼성엔지니어링, 삼성디스플레이 등의 자료까지 빼돌린 혐의로 추가 기소되기까지 했다. 최 씨는 로펌 4곳을 선임해 무죄를 적극 주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핵심기술 유출에 대해서는 신속하고 엄정한 처벌이 뒤따라야 내부자나 외부 경쟁사의 시도 자체를 줄일 수 있는데, 한국 실정에서는 오히려 또 다른 유혹을 심어줄까 우려될 정도”라고 말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기술 패권 다툼 속에서 중국, 미국 등 경쟁국으로부터의 기술 탈취 시도는 빈번해지고 고도화되는데, 사법부 역량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 기술 유출과 같은 전문적인 경제 사건을 다루는 재판부는 한정돼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 25부(25-1∼3)만 하더라도 식품, 보건 사건도 함께 다룬다. 피고인 수는 점점 늘어가고 사안은 복잡해지는데, 이를 소화할 수 있는 판사들은 소수뿐인 셈이다. 재경 지법의 한 판사는 “우선 전담 재판부를 늘려 문제를 해결해 보는 등의 접근도 필요하다”고 했다.
정치권 일부에서 민형사를 아울러 지식재산 관련 법원의 전문성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양향자 한국의희망 의원은 특허법원을 기술 유출 및 침해 사건의 전속 관할 법원으로 지정하는 법안을 조만간 발의할 예정이다. 양 의원은 “일본, 대만은 전문 법원을 통해 기술 유출 및 영업비밀 침해 사건을 통합해 처리한다”며 “국내는 기술 침해 사건에 대한 전문 법원이 없고 전담 재판부도 2년마다 순환하는 등 기술 전문성을 가질 수 없는 환경”이라고 준비 배경을 밝혔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