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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가을야구 탈락=야구 인생 끝’인 안권수의 엔딩 노트 [볼매운동:볼수록 매력있는 운동이야기]

입력 | 2023-09-21 08:05:00




[볼매운동:볼수록 매력 있는 운동이야기]은 찰나를 봐도 매력 있지만 자세히 보면 더 매력 있는 운동선수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재일교포 3세인 안권수는 군 복무를 하지 않아 올 시즌이 끝나면 더 이상 한국 프로야구에서 뛸 수 없다. 롯데 제공

정규시즌 21경기만 남겨놓은 현재 롯데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승패마진이 ‘-7(58승65패)’로 5위 SSG와도 5.5경기가 차이 나는 롯데는 남은 경기 수가 줄수록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더 희박해져 가는 가능성에 매달려야 한다.

그럴수록 안권수(30)의 ‘야구선수 수명’도 줄어든다. 재일교포 3세인 그는 군 복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올 시즌이 끝나면 더 이상 한국에서 뛸 수 없다. 안권수의 남은 야구 인생은 짧으면 3주, 설령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더라도 두 달도 남지 않은 셈이다.

지난달 잠실구장에서 만난 안권수는 남은 기간 목표를 묻자 “무조건 팀이 포스트시즌에 갈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어쩌면 안권수가 야구 인생을 지금까지 이어온 것도 그 ‘희박한 가능성’을 단단히 붙잡았기 때문이다.


○지푸라기인 줄 알았던 KBO, 동아줄이 되다
안권수는 고교 졸업 후 일본프로야구(NPB)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했다. 안권수는 “일본에서는 야구를 할 수 있는 길이 많이 있으니 계속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고 돌아봤다. 안권수는 와세다대 야구부(중퇴), 독립 리그를 거쳐 사회인야구팀에서 야구를 계속하며 프로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프로 바로 아래 단계인 실업팀에서 4년(2016~2019년)을 뛰고도 NPB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안권수는 은퇴를 고민했다. 안권수는 “계속 더 수준 높은 곳에서 야구를 하고 싶었는데 일본에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어요. 어차피 은퇴하는 마당에 일본 사회인야구보다 수준이 높은 한국프로야구(KBO) 트라이아웃(해외 아마추어 및 프로 출신 선수와 고교·대학 중퇴 선수들의 기량을 확인하는 입단 전 테스트)이라도 받아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라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섰던 2020 트라이아웃. 안권수는 ‘지명이 안 되겠구나’라고 100% 확신했다. 트라이아웃 당시 옆구리를 다쳤던 그는 실전 배팅은 시도도 못 했고 통증 탓에 주루 테스트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

2020 KBO 트라이아웃 당시 안권수. 동아일보 DB

그래도 안권수의 부모는 신인드래프트 현장을 직접 찾았다. 그해 신인드래프트 초청 명단에 안권수의 이름은 없었다.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 초청장은 웬만큼 상위라운드 지명이 확정적인 선수도 받기가 쉽지 않다. 지명되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가는 선수가 발생하는 일을 막기 위해 KBO가 초청 명단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짜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안권수의 부모는 한국 여행 일정을 일부러 드래프트 날짜에 맞췄다. 안권수는 2020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0라운드 전체 99순위로 두산의 지명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 안용치 씨는 당시 아들의 유니폼을 대신 받아서 들고 “혹시나 지명이 될까 왔는데 정말 이루어졌다. 기적이 일어난 것 같다”고 했다.


○이방인 안권수의 1군 생존 비법 ‘파이팅’
테이블 세터로 타선의 활력소를 불어넣는 역할을 주로 맡은 안권수는 타석만큼이나 벤치에서도 존재감이 남달랐다. 이길 때나 질 때나, 안권수는 가장 큰 목소리로 벤치에서 ‘파이팅’을 불어넣는 선수다.

안권수는 자신의 남다른 ‘파이팅’에 대해 “두산 시절부터 그랬어요”라며 웃었다.

득점 후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안권수. 롯데 제공

“제가 백업 선수로 시작했기 때문에 중간에 나가서 잘하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결과도 잘 안 나오고. 그러니까 맨날 1, 2군 왔다 갔다 했어요. 어떻게 하면 1군에 있을 수 있을까 생각했고 ‘일단 파이팅부터 하자’고 해서 시작했어요. 일단 분위기가 좋으면 야구도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 한국에 올 때 한국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었던 안권수는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당시 구단에 일본어를 잘하시는 감독님 매니저분이 도와주셨는데 저만 늘 봐주실 수는 없는 상황이라 솔직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잘하지 못했어요. 손짓·발짓 써가면서 지내다 3년 차쯤부터는 한국말로 소통이 잘 됐어요. 그것 때문에 야구도 좀 더 잘됐던 것 같아요”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에 온 뒤 가장 성적이 좋았던 세 번째 시즌 후 그는 또다시 은퇴의 갈림길에 섰다. 두산 구단이 길어야 1년밖에 더 뛸 수 없는 안권수의 방출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안권수는 ‘다른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행히 곧 롯데의 연락을 받았다. 안권수의 ‘진짜 마지막 시즌’은 그렇게 시작됐다.


○한 달 넘게 참다 받은 수술…두 달도 안 돼 복귀
안권수는 현역 프로야구 선수 중 유일하게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안권수는 “한국에서 지내면서 ‘영상으로 올리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하는 게 좀 있었어요. 마지막이니까 하고 싶은 건 다 하자는 생각에 시작했습니다”라고 했다.

안권수는 야구 인생 마지막 시즌을 맞아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안권수 유튜브 영상 캡처.

그렇게 후회 없는 시즌을 다짐한 올 시즌. 안권수는 롯데 ‘4월의 광란’ 선봉에 섰다. 팀의 1번 타자로 주로 나선 그는 개막 한 달간 타율 0.318로 타선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롯데는 4월을 1위로 마쳤고 안권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홈런도 맛봤다. 하지만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묻자 안권수는 이런 활약 대신 ‘수술’을 골랐다.

그는 “낙심이 너무 컸다”고 했다. 처음 팔꿈치 통증을 느꼈던 건 4월 30일이었지만 안권수는 한 달 넘게 통증을 참다 6월 8일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저도 (남은) 야구 인생 있다고 하면 빨리 수술받고 빨리 천천히 재활하고 그렇게 했을 텐데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잖아요. 처음에는 수술 안 받을 거라고 했죠. 그런데 한 달 정도 계속 야구를 하다 보니 너무 아팠어요. 방망이도 못 치고 공도 한 10m밖에 못 던졌어요. 나중에는 아예 팔을 들 수가 없었어요.”

결국 안권수는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두 달도 지나지 않은 7월 30일 복귀했다. 그 사이 팀은 5강권에서 멀어졌고 안권수 개인 성적도 1할대에 머물고 있다. 무리한 복귀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원래 병원 선생님이 석 달 걸린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9월이에요. 저는 시간이 없으니까…. 조금이라도, ‘하루라도 빨리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시즌 초반 타선의 활력소가 됐던 안권수는 6월 미루던 팔꿈치 수술을 받고 두 달도 안 돼 복귀했다. 롯데 제공

수술 전 임팩트 순간 한 손으로 타격했던 안권수는 수술 후 오른 팔꿈치에 힘이 들어가지 않자 양손 타격으로 메커니즘을 바꿨지만 이후 타격 밸런스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안권수는 “팔꿈치가 아직 100%가 아니기 때문에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가 원래 한손으로 치는데 그렇게 못해서 양손으로 치는데…”라며 한동안 뜸을 들이더니 “아예 안 맞습니다”라며 민망한 듯 웃었다.

“해보고 싶은 걸 다 해보고 싶다”던 마지막 시즌,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는 안권수는 “선수 생활하면서 웨이트나 운동, 당연히 열심히는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라며 쓴 입맛을 다셨다.

“작년에도 두산에서 3할 넘게 치다가 (7월 3일) 펜스 부딪히고(어깨 인대 부상), 뭐 어쩔 수 없는 부상이었긴 했지만, 복귀하고 나서 타율이 계속 떨어졌어요. 올해도 잘하다가 팔꿈치 때문에 이런데. 저는 그런 것도 다 야구선수 실력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한 번도 풀시즌을 나본 적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실력이 없는 거죠.”


○안권수의 마지막 소원, 오직 포스트시즌
안권수의 마지막 시즌은 그가 기대했던 ‘해피엔딩’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만약 팔꿈치가 아프지 않았다면, 그래서 시즌 초반 활약을 이어갔다면,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금메달을 따고 군 복무 문제를 해결한 뒤 후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도 있었기에 아쉬움도 더 클 수밖에 없다.

더욱이 가족들은 이제껏 안권수가 제대로 야구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안권수는 “가족들이 경기장에 오면 제가 귀신같이 그날 선발로 못 나갔어요. 올해 마지막으로 8월 22일(잠실 LG전)에 왔는데 그날 경기는 (비로) 취소됐고…. 아내는 제가 야구하는 거 이제 못 봐요. (가족이 다시 한국에 올) 기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타격 후 1루로 질주하는 안권수. 롯데 제공

안권수는 올 시즌이 끝나면 일본에 돌아가 취업할 회사를 알아볼 생각이다. 예전에 뛰던 사회인 야구팀에 돌아갈 생각도 없다. 발전 없이 더 낮은 수준의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의미를 찾기 어렵다고 느껴서다.

안권수는 “야구에 미련이 남아있는 건 맞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라며 “일단 팀이 꼭 포스트시즌 가면 좋겠어요. 개인 성적은 이제 신경도 안 써요”라고 했다.

타격감 회복에 애를 먹고 있는 안권수는 3일 두산전을 끝으로 선발 출장이 없다. 이후 대수비, 대주자로만 나서고 있는 안권수는 8타수 무안타 3득점이 전부다. 안권수에게도, 롯데에게도 대반전이 간절한 3주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