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정경을 자랑하는 멜로스섬. ‘밀로의 비너스’ 조각상이 발견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패권주의와 중립주의의 충돌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생존이 걸린 담판에서 아테나이인들은 멜로스인들의 희망을 읽어낸 듯 이렇게 타이른다. “위기를 맞으면 희망이 위안이 되겠지요. 그러나 가진 것을 한판에 모두 거는 사람은 망한 뒤에야 희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지요.”(‘펠레폰네소스 전쟁사’·천병희 옮김) 멜로스인들도 듣고만 있지 않았다. 그들은 정의와 신들의 호의를 내세워 항변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우리가 귀국의 힘과 아마도 월등한 행운에 맞서 싸우기는 어렵다는 것을 물론 잘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불의에 대항해 정의의 편에 서 있는 만큼, 신들께서 우리에게도 여러분 못지않은 행운을 내려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굶주림에 항복했지만 이어진 학살
‘신들께서 우리에게도…?’ 멜로스인들의 반론에 아테나이인들은 패권주의의 험한 얼굴을 드러냈다. “신들의 호의를 말하자면, 우리도 여러분 못지않게 거기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오. 우리의 목표와 행위는 신들에 대한 인간의 믿음과 인간 상호 간의 행동 원칙에 대한 신념에 전혀 배치되지 않기 때문이오. 우리가 이해하기에, 신에게는 아마도, 인간에게는 확실히, 지배할 수 있는 곳에서는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변하지 않는 법칙이오.”
정의에 대한 철학적 논쟁 같은 담판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테나이인들은 포위하고 섬을 외부세계와 고립시켰다. 굶주림에 내몰린 멜로스는 그해 겨울 항복했다. 하지만 아테나이인들에게 패자에 대한 관용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남자를 살해하고 여인들과 아이들을 노예로 팔아 넘겼다. 그러니 승리한 것이 약자들을 위한 정의가 아니라 강자의 정의였음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나? 멜로스인들을 도울 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스파르타의 원군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멜로스 학살의 결과를 그렇게 눈에 보이는 당장의 결과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 사건은 그 뒤 다른 사건들 속에서 진면목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아테나이인들은 멜로스를 정복함으로써 눈엣가시를 제거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일탈의 조짐을 보이던 다른 동맹국들 앞에서 일벌백계의 징벌 효과도 얻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멜로스의 학살이 자신들에게도 몰락의 시작임을 예상치 못했다.
탐욕이 부른 아테나이의 원정
멜로스섬에서의 승리 후 더 큰 욕망에 사로잡힌 아테나이인들은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멀리 떨어진 시켈리아섬으로의 원정을 감행한다. 하지만 무모한 원정은 참패로 끝났다. 시켈리아 전투를 그린 삽화.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멜로스의 승리와 시켈리아 원정의 참패는 아테나이 제국의 지배욕과 탐욕이 시차를 두고 낳은 쌍둥이였다. 무너지는 제국을 바라보며 아테나이인들은 멜로스인들에게 했던 말을 이제 스스로 되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위기를 맞으면 희망이 위안이 되겠지요. 그러나 가진 것을 한판에 모두 거는 사람은 망한 뒤에야 희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지요.”
신들을 믿는 사람들은 아테나이의 참패를 신의 정의가 실현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인간 본성의 자기 파괴성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지배욕이 낳은 ‘히브리스’(오만)의 결과로 판단할 것이다. ‘힘의 지배가 정의’이고 ‘정치는 도덕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판단 또한 ‘유치한 도덕론’일까? 눈먼 희망에 속아 ‘현실’을 모르고 몰락을 자초한 사람들 대다수가 ‘현실주의자들’이라는 것은 인간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현실주의자들’은 도덕도 현실의 일부라는 것을 모른다.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