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첫 배를 탔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원유를 싣고 운송하는 배였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승선하자마자 배는 페르시아만에 진입했다. 라스타누라라는 사우디의 항구에서 원유를 가득 싣고 호르무즈해협을 지나서 홍해로 들어갔다. 제다의 옆 얀부라는 곳의 저장소에 기름을 넘겨주었다.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 원유 수출이 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전쟁 위험 지역인 라스타누라에서 안전지대인 얀부에 기름을 이적해둔 것이다. 전쟁이 발발해도 기름을 안전한 얀부에서 싣고 나올 수 있다. 원유가 미국과 자유 진영에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지 알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나 미국에 기항했을 때 5대 오일 메이저에 대한 책을 사서 셸, BP 등 오일 메이저와 원유의 흐름에 대해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에는 미국 북서부에서 원목을 싣고 운송하는 배를 타게 되었다. 여기는 비가 많이 와서 원목이 잘 자라는 곳으로 유명하다. 계획적으로 벌목해서 한국, 중국, 일본으로 많이 수출한다. 원목을 배에 싣는 하역 근로자들은 미국 내에서 막강한 노조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았다. 일본에서 각재를 싣고 미국 동부로 수출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원목이 나지 않는 국가도 원목을 수입한 다음 가공해서 수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뉴올리언스에 들어갔다. 옥수수를 가득 싣고 한국으로 오는 항차였다. 식료품 회사들이 식용유를 만드는 데 옥수수가 필요했다. 미국 내륙지방에서 재배된 옥수수는 뉴욕주에 있는 이리호와 연결된 미시시피강을 따라 뉴올리언스까지 내려온다. 한배에 가득 싣고 부산항에 들어와서 풀어주었다. 매도인은 카길이라고 했다. 카길, 드레퓌스 등 5대 곡물 메이저에 대한 책을 사서 공부했다. 직접 곡물을 싣고 운송하는 배에서 일하면서 그 곡물의 매도인이 누구이며, 그들의 이면 세계를 책을 통해 알게 되는 즐거운 독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흑해 우크라이나의 오데사도 큰 곡물 항구임을 알게 되었다.
포항에서 철제를 싣고 미국 동부로 갔다. 철제를 싣기 위해서는 무거운 철제를 고정시키기 위해 더니지(dunnage)라는 완충재를 선창 위에 깔아야 한다. 전문 직업인인 하역회사가 이 일을 했다. 해운업에는 운송 관련 영업 말고도 이런 부대 산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주와 브라질에서 철광석을 싣고 포항으로 온 적도 있다. 호주와 브라질에서 생산되는 철광석을 포항제철에서 제품으로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하는 흐름을 알게 되었다.
해운업은 수출입 화물의 운송을 해주고 운임을 받는 영업이다. 선장은 이를 실행하는 야전사령관이다. 원자재와 상품을 세계 곳곳에 운송하는 가운데 그 국제적인 흐름, 즉 무역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조선업, 수산업, 해양과학 같은 바다산업에서 수출을 증대시켜야 하고 이 상품들의 이동을 담당하는 해운업이 탄탄하게 성장하도록 평생을 바칠 부국강병의 소명의식을 가슴에 품게 되었다. 현장에서 체득한 국제무역에 대한 소양은 해상법 교수와 해양수산부 정책자문위원장직을 수행하는 현재의 나에게 큰 소용이 된다. 바다 체험 덕분에 나는 바다 전문가이자 해결사로 성장하고 있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