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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브로드컴, 부품공급 중단하며 “핵폭탄”, 삼성전자에 ‘갑질’ 확인… 과징금 191억원

입력 | 2023-09-22 03:00:00

공정위 조사, 3년여 만에 결론
무선통신 부품 인질로 삼성 협박
삼성은 ‘생산라인 차질’ 끌려다녀
2100억 피해… 솜방망이 제재 지적




삼성전자에 불공정 계약을 강요한 미국의 통신용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이 191억 원의 과징금을 물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브로드컴은 자신들의 부품 공급 중단 조치를 스스로 ‘폭탄 투하’ ‘핵폭탄’에 비유하는 등 삼성전자에 ‘갑질’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정부가 확인한 삼성전자의 피해액만 최소 2100억 원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솜방망이 제재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는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삼성전자에 불리한 계약을 강제한 브로드컴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191억 원을 부과한다고 21일 밝혔다. 문제가 된 계약은 2020년 3월 양사가 서명한 부품 공급에 관한 장기계약(LTA)이다. 삼성전자가 2021년부터 3년간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 브로드컴의 스마트폰 부품을 매년 7억6000만 달러(약 1조 원) 이상 구매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실제 구매금액이 이에 못 미치면 차액을 배상하는 내용도 계약에 포함됐다.

무선통신 부품 분야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가진 브로드컴은 2018년부터 퀄컴, 코보 등이 유사 제품을 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자 삼성전자의 이탈을 막기 위해 이런 계약을 강요했다. 삼성전자는 장기계약을 거부했지만 브로드컴은 신규 구매 주문 승인 중단, 기존 발주 물량 선적 및 기술지원 중단 등의 카드를 동원해 압박했다.

브로드컴은 공정위 심의 과정에서 해당 계약이 자발적으로 체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들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갑질을 할 위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부 업무 보고 과정에서는 삼성전자에 대한 부품 공급 중단 조치를 ‘폭탄 투하’ ‘핵폭탄’ ‘기업 윤리에 반하는’ ‘협박’ ‘(삼성전자의) 심각한 진퇴양난’ 등으로 표현했다. 부품을 인질 삼아 삼성전자를 압박하려는 목적이 분명했던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런 브로드컴의 공급 중단 조치에 대해 ‘생산라인에 차질이 우려된다’ ‘가진 카드가 없다’ 등으로 언급하며 브로드컴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이 계약으로 삼성전자는 경쟁사보다 비싼 브로드컴의 부품을 필요 이상으로 구매해야 했다. 공정위가 확인한 추가 비용 부담만 최소 1억6000만 달러(약 2100억 원)다. 넘치는 재고를 해결하기 위해 경쟁사 제품을 브로드컴 부품으로 바꾸거나 보급형 모델에 브로드컴 부품을 탑재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브로드컴과의 계약으로 인한 피해가 3억2630만 달러(약 4300억 원)에 달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제재가 약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자 브로드컴은 200억 원 규모의 반도체 상생 기금을 만들겠다는 내용의 동의의결안을 냈다. 동의의결이란 법 위반 혐의를 받는 사업자가 시정방안을 제시하면 위법 여부를 확정 짓지 않고 사건을 신속 종결하는 제도다. 당시 공정위는 피해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는 삼성전자의 주장을 받아들여 동의의결을 기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과징금 수위가 자진시정안보다도 못하게 됐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 상한에 맞춰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추가로 피해구제 소송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공정위 제재 이후 피해 기업이 피해액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서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소송을 제기할 경우 공정위가 확보한 증거 자료들이 소송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이날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세종=송혜미 기자 1am@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