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삶 꿈꾸던 이들 머물렀던 1900년대의 여성 전용 호텔 뉴욕의 여성사 그대로 담겨 ◇호텔 바비즌/폴리나 브렌 지음·홍한별 옮김/416쪽·2만4000원·니케북스
“젊은 여성에게 이곳에서 당신이 꿈꾸는 호화스러움을 실현할 수 있다는 걸 아나요?”
1928년 2월 미국 뉴욕에 문을 연 여성 전용 호텔 바비즌이 내세운 광고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근로자이자 소비자로 부상한 여성들은 꿈과 직업을 찾기 위해 뉴욕으로 몰려왔다. 바비즌은 불편한 하숙집이 아니라 ‘자기만의 방’을 원했던 신여성의 욕망을 반영한 산물이었다. 훗날 모나코 왕비가 된 미국 배우 그레이스 켈리(1929∼1982)가 바비즌의 대표적인 투숙객 중 한 명이다.
뉴욕 배서칼리지에서 국제학, 젠더, 언론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1920년대부터 2005년까지 호텔 바비즌의 역사를 조명했다. 실제 호텔에 묵었던 당사자들과 호텔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당대 문헌과 기사를 종합해 생생한 이야기를 전했다.
하지만 1960, 70년대 여성운동을 거치며 바비즌은 쇠락의 길을 걷는다. 여성이 일하고 술을 마시고 홀로 거주하는 일이 당연해지자 굳이 여성 전용 호텔을 찾을 필요가 적어진 것. ‘여성 전용’이란 수식어가 구시대의 전유물이 되면서 1972년경부터 객실 점유율이 급감했다. 1981년 여성 전용이란 정체성을 버린 바비즌은 2005년부터 부호들이 사는 콘도로 변모했다.
호텔의 흥망성쇠에 20세기 뉴욕의 여성사가 그대로 담겼다. 저자는 “바비즌은 당대 미국 여성에게 주어진 제한적 자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했다. 원제 ‘The Barbizon: The Hotel That Set Women Free(바비즌: 여성을 자유롭게 해준 호텔)’.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