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이나 협박을 동원한 강제추행죄는 세 차례의 전환점이 되는 대법원 판례를 통해 처벌 범위를 넓혀왔다. ‘선 폭행 후 추행’이 아니라 폭행 자체가 추행이 되는 ‘기습추행’을 인정한 판례, 성욕을 채우려는 동기가 없어도 추행이 성립한다는 판례, 그리고 흉기로 위협하며 자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신체 접촉 없이도 강제추행이 가능하다는 판례다. 대법원이 21일 강제추행죄의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또 한 차례의 전환점이 될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강제추행죄로 기소된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 씨는 현역 군인이던 2014년 사촌 여동생 B 양을 침대에 쓰러뜨리고 신체를 만진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사건의 쟁점은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느냐는 것. 군사법원에서 열린 1심에선 징역 3년을 선고했지만 2심 재판부는 폭력의 정도가 저항을 어렵게 할 수준이 아니라며 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을 무죄로 판단했다. B 양이 저항하지 않았다는 점이 근거가 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강제추행에서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해 피해자의 항거가 곤란할 정도일 것을 요구하는 종례의 판례 법리를 폐기한다”며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폭행)하거나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의 해악을 고지(협박)하는 경우에도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강제추행죄는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가 목적이므로 원치 않는 성적 접촉을 당했다면 폭행·협박이 반드시 항거 곤란 수준일 필요는 없고, 피해자에게 저항을 요구하는 것은 형평과 정의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다.
▷일각에서는 강제추행에서 ‘강제’의 기준을 완화하면 단순추행이나 비동의 추행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묻는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법 규정을 확장 또는 유추 해석하는 것을 금지하는 대법원 판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의 해석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더 안전하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