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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형사 사건 재판 촬영을 못하게 된 이유[청계천 옆 사진관]

입력 | 2023-09-23 13:40:00

백년사진 No. 36





▶100년 전 신문에 실린 사진을 통해 오늘의 사진을 생각해보는 [백년사진]입니다. 죄수복을 입은 남성들이 화면 왼쪽의 누군가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1980년 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 육군 계엄보통군법회의 대법정에 출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과 유사하기도 하고, 한국 현대사의 아픈 기억인 이념 사범 사건 재판 모습을 기록한 사진과도 구도가 비슷합니다.
그러고 보니 1920년대 신문에서는 기자들이 법원 내부의 공판 과정을 사진으로 찍었던 사례가 꽤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자주 신문에 재판 모습이 보도되었습니다. 기사를 읽어보겠습니다.

9월 19일자 인천 사건의 공판정 = 선두에 선 것은 윤응념/ 동아일보 1923년 9월 19일자.




인천을 중심으로 하여 대대적으로 군자금을 모집한 윤응념 일파에 대한 공판은 예정과 같이 경성지방법원 제 7호 법정에서 열리었다. 시간 전부터 군중은 사면으로 모여들어 방청석은 터지고 넘칠 듯이 되었으며 그 위에 입장하지 못하고 섭섭히 그만 돌아간 사람도 적지 아니하다. 시간이 되매 삼시(三矢) 판사와 대원(大原)검사와 기타 서기가 림석하여 심리를 개시하엿는데 먼저 피고 일동의 주소성명과 직업 연령에 대한 문답이 있은 후 사실 심리에 들어 갔더라.

▶ 당시 일본 검찰 입장에서는 권총 강도, 지금의 우리의 입장에서는 군자금 마련을 위해 부잣집을 턴, 독립운동가에 대한 기사입니다. 사건의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에 ‘윤응념 인천사건’으로 검색하니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사건 자체가 아니고, 법정에서 이뤄지는 공판을 사진기자들이 촬영할 수 있는가 하는 겁니다. 만약, 1923년 인천사건과 같은 상황이 다시 일어날 경우, 사진기자들이 공판 모습을 촬영할 수 있을까요? 현행법으로는 신문사와 방송사의 기자들이 판사의 허가 없이 법정 내부를 촬영하거나 녹음할 수 없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신문사 사진기자들은 법정 내부 촬영을 몇 번씩은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사진기자들 중에는 재판 장면을 한 번도 촬영해보지 못한 기자들이 대부분입니다.

▶ 사실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기자들이 재판 장면을 찍지 못하게 된 계기가 ‘이철희 –장영자 사건’이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1982년 5월 4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이철희 장영자 부부를 구속했습니다. 육사 2기 출신으로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내고 국회의원까지 지낸 이철희와 그의 부인 장영자는 ‘단군 이래 최대의 금융 사기 사건’이라고 일컬어지는 어음사기를 벌였습니다. 게다가 당시 대통령의 처가가 연루된 정황까지 있어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진 큰 사건이었는데 이철희 장영자 부부의 공판을 취재하던 사진기자들이 법정에서 올라가지 말아야할 연단 등에 올라가고 소란스럽게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사진과 영상기자들의 법정 출입이 제한되기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사진기자 선배들의 증언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찾다 보니 두 사람이 구속되어 재판 받기 직전에 이미 법이 바뀌었습니다.


▶ 기자들이 법정 사진을 거의 촬영하지 못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1982년 2월 26일자 중앙일보를 보니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와 있습니다.


“대법관 회의는 25일 형사피고인 등 사건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법정 안에서의 녹화, 촬영, 중계방송을 못하도록 방청 촬영 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 3월 10일부터 시행토록 했다. 이전의 규정에는 재판장의 허가를 받아 촬영 등이 가능토록 되어 있었으며 ▲심리 개시 전에만 가능하고▲법단위에서는 촬영을 금하며▲촬영 등으로 인한 소란을 금지해왔다. 대법원 당국자는 언론, 출판의 자유가 다소 제한된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인권보호와 법정 안의 질서유지 등을 위해 이같이 규칙을 개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1982년 2월 26일 중앙일보.
▶ 1982년 2월 열린 대법관 회의에서 ‘앞으로는 판사의 동의 이외에 사건 당사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재판을 촬영할 수 있다’는 규칙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인권보다는 사회적 관심 정도가 촬영 허가의 척도였지만 1982년을 기점으로 개인의 인권에 대한 강조가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2023년 9월 현재 법원조직법 제 59조는 “누구든지 법정 안에서는 재판장의 허가없이 녹화 촬영 중계방송 등의 행위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판장은 허가 과정에서 사건 당사자의 동의 여부를 검토해야 합니다.

▶ 그런데 1982년 이후에도 우리 사회는 몇 번의 중요 사건의 공판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1996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공판, 2013년 내란음모 혐의를 받았던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공판, 2015년 세월호 선장 등에 대한 공판,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공판, 2018년 이명박 전 대통령 공판 등 법원이 특별히 허가한 경우에 예외적으로 대표 취재단 (POOL)이 법정에 들어가 촬영했습니다. 당사자들이 다 동의를 했기 때문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법원이 판단하기에 국민의 알권리가 당사자의 동의보다 우선한다면 기자들을 법정 안으로 들어오게 해 촬영을 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관련 규정을 한번 찾아봤습니다.



[법정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규칙]

제 3조(퇴정 명령 등) 재판장은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자에 대하여 이를 제지하거나 또느 퇴정을 명할 수 있다.
재판장의 허가 없이 녹음, 녹화, 촬영, 중계 방송 등을 하는 자
제 4조(촬영 등의 제한)
①법원 조직법 제 59조의 규정에 의한 재판장의 허가를 받고자 하는 자는 촬영 등 행위의 목적, 종류, 대상, 시간 및 소속기관명 또는 성명을 명시한 신청서를 재판기일 전날까지 제출하여야 한다.
② 재판장은 피고인(또는 법정에 출석하는 원, 피고)의 동의가 있는 때에 한하여 전항의 신청에 대한 허가를 할 수 있다. 다만, 피고인(또는 법정에 출석하는 원, 피고)의 동의 여부에 불구하고 촬영 등 행위를 허가함이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어떻게 보면 법원이 원칙이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회적 관심 또는 국민의 알권리의 정도를 법원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여지가 있습니다. 법원에서 재판 받는 형사 피의자에 대한 촬영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미국 신문에서는 가끔 법정 내부 모습을 화백이 그림으로 그려 보도하기도 합니다. 다만, 2018년 미국 올림픽 체조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가 선수들을 성폭행한 사건 등 사회적 주목을 받는 사건의 경우, 미국에서도 판사가 생중계와 사진기자의 취재를 허용합니다.


▶ 한국이나 미국의 사법부가 대부분의 형사 사건에서 카메라맨의 법정 내부 촬영을 통제하는 이유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인권도 인권이려니와 사실관계를 따져서 판단을 해야 하는 법관들의 입장에서 취재진에 의해 법정이 소란스러워지면 판결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미디어가 싫어하는 것과 법원이 판단하는 죄가 되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 선입관을 피하기 위한 장치로 취재진 출입금지를 만든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판사 사회 내부에서도 사법부가 법정 촬영과 방송 등을 통한 재판과정 공개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끈 적도 있습니다.
2008년 7월 말, 서울남부지방법원 윤성근 부장판사는 ‘법정 내의 촬영 또는 방송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법원 내부 게시망에 올렸습니다. 논문의 뼈대는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재판 과정의 공개를 전향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윤 부장판사는 논문에서 “미성년 성폭행 사건과 같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재판장의 적절한 지휘 하에 재판 과정에 대한 촬영이나 방송을 포함해 재판 공개가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적으로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 오늘은 100년 전 빈번하게 있었던 형사사건 재판 사진이 오늘날 거의 사라진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