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내 인권 위험 평가하는 인권 실사 프로세스 갖출 필요 커져 국제 인권경영 지표 ‘CHRB’ 주목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인 유니레버는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공급업체와 협력해 현지에서 제공되던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공급망 내 노동자들의 인권 보호 실태를 실사한 결과, 인권 존중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인권 경영의 실천 성과를 인정받은 유니레버는 세계벤치마크연합(WBA)이 발표한 ‘2022년 기업 인권 벤치마크(CHRB) 보고서’에서 129개 평가 대상 기업 중 최고점을 기록했다.
올해 6월 EU 공급망 실사법이 유럽의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인권 경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EU 공급망 실사법은 직원 수와 EU 대상 매출액이 일정 규모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공급망 내 협력 기업의 인권과 환경에 대한 침해 여부를 조사하고 문제 발견 시 시정해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규정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적극적인 실사와 평가를 통해 인권 경영을 실천하고 그 내용을 투명하게 공시해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유니레버는 매년 인권 경영 보고서를 별도로 출간할 뿐만 아니라 연간 감사보고서 비재무적 파트에도 환경뿐 아니라 인권 부문의 개선 사항을 상세히 공시하고 있다.
스웨덴의 정보통신 회사인 에릭손 또한 외부 전문 기관과 인권영향평가를 진행하고, 그 결과와 개선 사항을 웹사이트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공시한다. 특히 에릭손은 본사 규범을 43개 언어로 제공하고, 고충 처리 프로세스를 63개 언어로 운영해 광범위한 공급망을 대상으로 인권 경영의 적극적인 실천 의지를 표시하고 있다.
최근 국내 일부 기업도 지속가능 경영 보고서에 인권 항목을 포함시키는 등 인권 경영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인권 실사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와 정보는 부족한 편이다. 국내에서 CHRB를 활용해 인권 경영을 평가하는 비정부기구(NGO) ‘휴먼아시아’의 서창록 대표는 “국내 기업도 EU 공급망 실사법에 대응해 인권 리스크를 진단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인권 정책을 수립, 시행하고 개선하는 체계와 프로세스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