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콘텐츠에 복제방지 이미지를”
英, 美빅테크 겨냥 “기술 독점 금지”
尹대통령도 ‘디지털 권리장전’ 발표
AI규범 본격 논의 앞 주도권 잡기
세계 주요 국가들이 인공지능(AI)을 포함한 디지털 기술의 활용 방안과 이용자의 행동 양식에 대한 규범을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21일 미국 뉴욕대에서 디지털에 누구나 공정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디지털 권리장전’의 5개 기본 원칙을 발표했다. AI 등 기술이 저작권이나 노동 환경과 같은 기존 가치 체계를 뒤흔드는 상황에서 자국의 입장을 글로벌 표준에 더 많이 반영하기 위한 ‘규범 패권 경쟁’에 나선 것이다.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2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새 규범을 먼저 안착시키는 국가가 디지털 심화 시대의 승자가 될 것”이라며 “한국이 글로벌 논의를 이끌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밝힌 디지털 권리장전은 일종의 헌장 형태로 AI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하기 위한 기본적인 사회 규범을 담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조만간 권리장전의 전체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영국 경쟁시장청(CMA)은 18일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옛 페이스북) 등 미국 빅테크(대형 첨단기술 기업)를 겨냥한 ‘AI 7대 원칙’을 발표했다. AI 모델을 개발한 기업 측이 서비스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지도록 했고, 기술과 데이터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영국 정부는 11월 ‘AI 정상회의’를 열어 주요국 정상과 빅테크 최고경영자(CEO) 등을 초청할 예정이다. 유럽연합(EU)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이 회의에 참석해 AI 규범 마련을 위한 영국의 움직임에 호응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을 비롯해 영국, EU 등이 규범 마련을 서두르는 것은 유엔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본격적으로 AI 규범을 논의하기에 앞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략이다. 유엔은 외부 기술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AI 관련 규범과 규제 방안을 논의해 내년 9월 전까지 발표하기로 했다. OECD도 11월 ‘디지털 권리 협의회’를 열어 AI를 포함한 새로운 디지털 질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강력한 AI 기술을 보유한 미국과 이에 대항하는 영국, EU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다.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면서 기업을 육성하고 있는 중국도 변수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과 유럽, 중국이 물밑에서 엄청난 (AI 규범)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며 “한국도 빠르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가 권리장전 마련을 위해 다수의 교수와 업계 전문가, 이용자의 의견을 듣기 위해 현장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 중 하나는 ‘디지털 격차’였다. 박 차관은 “현장 간담회에서 만난 한 청년은 각자의 디지털 능력이 더 큰 경제적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걱정했다”며 “새 규범을 통해 챙겨야 할 중요한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AI 등 디지털 기술 고도화에 따른 노동 환경 변화도 권리장전 논의 과정에서 언급된 중요한 주제였다.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오히려 노동 강도가 높아지는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내용을 권리장전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기정통부는 AI 모델이 잘못된 내용을 그럴듯하게 답변하는 할루시네이션(환각 효과) 등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기술 연구개발(R&D)도 추진할 예정이다. 내년부터 2027년까지 22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차세대 생성 AI 기술 개발’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