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를 거의 병합했을 때, 스코틀랜드를 구한 2명의 독립영웅이 있다. 윌리엄 월리스와 로버트 브루스다. 월리스는 영국군에 잡혀 처형된다. 브루스는 보다 끈질기고 운도 좋았다. 망명과 도망을 반복하며 저항하다가 마침내 영국군을 몰아내고, 로버트 1세로 즉위한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브루스는 월리스를 배신하고 그를 영국군에 넘기지만 나중에 이를 후회하고, 영국군과 싸우는 것으로 묘사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독립전쟁이란 거국적 투쟁의 장에서 두 사람이 데면데면했던 것도 사실이다. 두 사람의 정치적 지지 기반이 달랐고, 개인적 야심도 작용했을 것이다.
독립전쟁이란 대의 앞에 두 사람의 정치적 혹은 계급적 갈등을 융합하고 화해하는 것은 두 사람의 몫이 아니라 역사의 몫, 후대인의 몫이다. 월리스와 브루스의 화해는 쉽다. 두 사람을 갈랐던 정치적 분열은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은 그렇지 못하다. 20세기를 나눈 이념의 벽은 현실 사회에도 그대로 존재한다.
육사에서 세계의 전쟁영웅, 알렉산드로스와 나폴레옹, 로멜의 흉상을 세웠다면 어떨까? 그것이 학살과 약탈, 침략전쟁, 파시즘을 지지한다는 메시지일까? 역사적 평가는 학자의 몫이고, 역사 인물의 교훈은 선택적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정치가 개입할 필요가 없는 곳에 정치가 개입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지만, 해결책은 올바른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정치 과잉의 해소이다. 티셔츠 색깔만 봐도 “당신 저쪽 아니오?”라고 추궁당하는 사회가 정상은 아니다. 정치인이고 지식인이고 그걸 해소하려는 사람보다 이용하고 앞장서는 사람이 더 많은 건 비정상을 넘어 위험 단계이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