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상 의사 진료보조 역할만 암환자 대변 주머니 교체도 위법 돌봄 사각지대 주민 돕기 힘들어 정부 “간호사 업무 범위 확대 검토”
홀로 사는 지적장애인 A 씨(60)는 최근 대장암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퇴원했다. 인공 항문에는 대변 주머니를, 쇄골 쪽 혈관에는 항암제 카테터를 매단 상태였다. 요양병원에 입원할 형편이 안 됐기에 스스로 대변 주머니를 갈고 카테터 주위를 소독해야 했다.
관할 행정복지센터(옛 주민센터) 소속 간호사 B 씨는 병원 요청에 따라 A 씨의 자택에 방문했다. 필요한 처치를 안내하고 며칠 후 A 씨를 다시 찾았더니 카테터가 반쯤 빠져 달랑거렸고 대변 주머니도 터지기 직전이었다. 현행 의료법상 간호사는 의사의 지도 없이 카테터 고정이나 대변 주머니 교체를 할 수 없다. 환자를 그대로 둘 수 없었던 B 씨는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음을 감수하고 A 씨의 카테터를 고정하고 대변 주머니를 교체해줬다.
● “61년 묵은 의료법, 돌봄 수요 대응 못 해”
이 조문은 1962년 3월 의료법이 제정된 이래 61년 넘게 그대로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들어 “혈압과 혈당, 콜레스테롤 측정은 의사의 지도 없이 간호사가 단독으로 행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은 게 전부다. 호흡이 가쁜 환자의 산소포화도를 재거나 가래를 빼주는 등 대다수의 간호 행위가 여전히 불법이다. 욕창 환자의 피부가 짓무르지 않게 소독하거나 고령 환자의 콧줄(레빈 튜브)을 갈아줄 때조차 처벌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행정복지센터 소속 간호사들은 처벌 위험을 감수할지, 환자의 고통을 외면할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고 호소한다. 한 간호사는 “우리가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건 ‘병원에 가시라’고 안내하는 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 정부·야당, 병의원 밖 간호 범위 확장에 공감
이처럼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정은 올 6월 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던 간호법 제정안이 극렬한 직역 갈등을 빚고 폐기됐을 때도 제기됐던 문제다. 당시 복지부는 간호사의 역할을 의료법에서 떼어낸 법안이 보건의료 현장에서 여러 직역의 협업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봤고, 윤석열 대통령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복지부는 최근 ‘의료법 체계 연구회’를 발족하고 의료법 개정을 통해 지역사회 내 간호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민주당도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넓히되 기존 법안에서 논란이 됐던 표현을 다듬어 관련 법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정부와 야당이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의료기관 밖에서 이뤄지는 간호의 범위를 넓히는 데 공감하는 것이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