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더 웨일’ 연출 신유청 씨 동명 영화 아카데미 2개 부문 수상 “한 출연진의 삶을 바꾼 작품이면 관객의 삶도 변화시킬수 있겠죠”
동명 영화의 원작인 연극 ‘더 웨일’을 연출한 신유청 씨는 “연극은 여러 제약 속에서도 시공간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누군가를 도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내가 제법 괜찮은 인간이란 느낌이 들어요. 그 뿌듯함이 좋아서 또 누군가를 돕고요. 그런 나는 이타적입니까, 이기적입니까?”
서울 종로구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30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더 웨일’을 연출한 신유청 씨(42)가 말했다. 극장에서 14일 그를 만났다. ‘더 웨일’은 몸무게 270kg의 은둔형 외톨이 찰리가 죽음을 앞둔 일주일간 자신을 도우려는 인물 4명과 쌓아올리는 희망과 절망을 그렸다. 2012년 미국 덴버에서 초연된 후 동명 영화로 제작돼 올해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과 분장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 공연되는 건 처음이다.
공연은 치밀한 인물 묘사를 통해 우리 내면의 양가적 감정을 들춘다. 배우 백석광이 매 공연마다 1시간이 걸리는 특수 분장을 거쳐 초고도 비만인 찰리를 연기한다. 찰리와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10대 딸 엘리(탁민지)는 아빠에 대한 서운함을 짓궂은 방식으로 푼다. 신 씨는 ‘도와주겠다’며 찰리에게 다가선 인물들에게 촉발되는 감정에 주목했다. 그는 “관객의 머릿속에 ‘엘리는 나쁜 애인가, 표현은 짓궂어도 착한 애인가’ 하는 생각이 뒤엉킬 것”이라며 “우리는 선과 악, 사랑과 미움을 구분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야기는 찰리의 집 안에서만 전개된다. 동명 영화가 4 대 3 화면 비율로 갑갑함을 강조한 것과 달리 연극은 집 무대 세트의 벽을 없애 개방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동선을 부각해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성을 잘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유기적 움직임을 강화하고자 이소영 안무가와도 협업했다. 이 안무가는 신 씨에게 제56회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안겨줬던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에서도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신 씨는 ‘더 웨일’의 연극 원작이 있단 것도 모른 채 제작을 결심했다고 했다. 영화에서 찰리 역을 맡은 브렌든 프레이저가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수상 소감으로 ‘지난 30년간 내 삶은 쉽지 않았으나 이 작품은 내게 생명줄을 던져줬다’고 말한 것을 듣고 “넘쳐흐르는 기쁨을 느껴 대본을 볼 필요도 없다”면서 결심이 선 것이다.
“영화를 통해 구원받은 프레이저가 마치 절망의 끝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듯한 소감이었어요. 한 출연자의 삶을 뒤집을 수 있는 작품이라면 관객의 삶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죠. 이번 공연이 그런 변화구가 되길 희망합니다.” 전석 5만 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