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 생명 지키는 M-Tech] 〈14〉 노르웨이의 전기차 안전대책
차에 불나자… ‘특수 담요’ 사용 수 분 만에 진화 ❶ 실험용 승용차 시트에 불을 붙이자 몇 분 지나지 않아 화염이 차량 전체로 퍼지고 있다. ❷ 본보 한재희 기자가 특수 담요를 차량에 씌우고 있는 모습. ❸ 특수 담요가 약간 떠 있는 부분을 발로 밟아 산소가 추가로 유입되지 않게 하자 2, 3분 뒤에는 손으로 만져도 화상을 입지 않을 정도로 온도가 낮아졌다. 오슬로=한재희 기자 hee@donga.com·브리지힐 제공
18일 노르웨이 수도인 오슬로 인근 호뵐의 한 보험사 안전센터.
안전센터 요원이 승용차 시트에 불을 붙이자 몇 분 지나지 않아 불길이 창문을 넘어 차 전체로 퍼지기 시작했다. ‘빨리 꺼야 한다’는 생각이 들 무렵 요원들은 큼지막한 ‘특수 담요(질식소화포)’로 차를 덮었다.
특수 담요는 가로 6m, 세로 8m 크기였는데 무게가 26kg이어서 성인 2명이 함께 들어야 했다. 담요가 차를 덮자 3, 4초 만에 매캐한 연기가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특수 담요가 약간씩 떠 있는 부분을 요원들이 발로 누르자 연기는 더 빨리 줄었다. 2, 3분이 지나자 담요 위를 만져도 화상을 입지 않을 정도로 온도가 떨어졌다.
● 섭씨 2500도까지 견디는 특수 담요
동아일보 기자는 이날 노르웨이의 차량용 질식소화포 개발 업체 ‘브리지힐’의 특수 담요 화재 진압 실험에 동참했다.
특수 담요는 화재가 발생한 차량을 산소와 차단하는 방식으로 불을 끈다. 화재가 계속 이어지기 위한 세 가지 요소인 연료, 고온, 산소 중 산소의 유입을 막는 것이다. 특수 담요에는 탄소 소재의 일종인 그라파이트가 사용돼 섭씨 2500도까지 견딜 수 있다. 보급형 제품도 있는데 특수 섬유를 사용해 1600도까지 견딜 수 있게 제작됐다. 차량 화재의 최고 온도는 1000∼1100도이기 때문에 특수 담요가 녹지 않는다. 이날 실험은 기자가 참여한다는 점을 감안해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적은 내연기관 차량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노르웨이 현지에서 특수 담요는 주로 전기차 화재 현장에 투입된다.
전기차의 경우 고전압 배터리팩에 불이 붙으면 열폭주 현상이 발생한다. 배터리 온도가 1000도까지 오르고,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산소와 가연성 가스가 발생해 물을 뿌려도 계속 불이 되살아난다.
브리지힐은 올 5월 오슬로에서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모델 ‘코나EV’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하며 화재 진압 효과를 확인했다. 당시 64kWh(킬로와트시) 용량의 배터리가 87% 충전된 차량에 불길이 치솟아 약 10분 만에 온도가 섭씨 1000도에 달했다. 하지만 특수 담요를 덮자 30초 만에 온도가 400도 밑으로 떨어졌다. 5분이 지났을 때는 200도대로 낮아졌고, 15분가량 흐르자 100도대로 떨어졌다.
브리지힐의 토마스 할보르센 최고판매책임자(CSO)는 “전기차 화재 진압을 위해 이동식 수조를 조립하고 차량을 침수시키려면 물 5만∼10만 L가 필요하다. 또 지하 주차장처럼 좁은 공간에는 설치하기 힘들다”며 “특수 담요는 전기차 화재 진압에 효과적이고, 지하 공간에서 유독가스 피해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화재가 늘고 있는 만큼 특수 담요 도입 확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특수담요는 부피가 작아 터널 등 화재 취약지역에 비치하면 큰 효과를 낼 것”이라며 “소방 당국 외에도 다른 정부 기관이나 민간에서도 활용할 만한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 무선 전기차 충전기도 상용화
노르웨이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전기차가 활용된다. 특수 담요를 포함해 전기차 관련 용품 및 인프라도 널리 보급돼 있다. 무선 전기차 충전 시설도 그중 하나다.
오슬로시는 올 초 미국 무선충전 업체 모멘텀 다이내믹스와 재규어, 노리에스택시 등과 함께 세계 첫 무선충전 택시 승강장을 만들었다. 언뜻 보기에는 택시 대기 장소에 파란색 페인트를 칠한 것에 불과한 듯했다. 하지만 해당 공간 아래는 전기차 무선충전 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재규어나 볼보 전기차를 운전하는 택시 기사들은 이곳에서 손님을 기다리면서 차량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3초 후부터 바로 충전이 시작된다고 한다. 오슬로시는 무선 전기차 충전 시설을 더 늘릴 계획이다.
오슬로시에서 도시 환경 업무를 담당하는 스투레 포르트비크 씨는 “전자파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사람도 있지만 주방에 있는 인덕션보다 안전하게 설계됐다”며 “차에서 내리지 않고 편리하게 충전기를 이용할 수 있어 앞으로 이용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아케르스후스의 요새 지하 방공호를 방문한 날도 전체 85면의 주차 공간이 대부분 채워져 있었다. 지하에 있는 주차장이지만 배기가스 배출이 없는 전기차들이 드나들다 보니 공기 질도 나쁘지 않았다. 포르트비크 씨는 “2017년 처음 방공호에 전기차 주차장을 만들겠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미쳤다’, ‘어렵지 않겠냐’고 했다”며 “지금은 안전하게 운영되며 전기차 강국 노르웨이의 핵심 시설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오슬로=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