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림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총감독
18일 전남 순천만국가정원에서 만난 최덕림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총감독은 “아름다운 순천만과 정원을 연결하는 생태축을 통해 순천이 세계적 생태관광도시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순천=김선미 기자
추석 연휴를 겨냥해 억만송이 국화를 심은 순천만국가정원의 노을정원.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제공
순천시의 새 슬로건 ‘순천하세요’가 쓰여진 이 양산은 박람회장에서 햇빛을 가려주는 용도로 대여된다. 순천=김선미 기자
“‘순천처럼 하세요’라는 뜻이다. 순천이 생태관광 도시로 세계적 관심을 받게 되면서 국내 지방자치단체들뿐 아니라 대만과 베트남 등에서도 벤치마킹하러 많이 온다.”
시민들의 휴식처로 거듭난 순천만국가정원의 오천그린광장.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제공
“2013년 박람회는 순천만으로 도시가 팽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에코 벽을 정원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에 공공정원을 최초로 도입한 의미가 있었다. 올해 박람회는 저류지와 도로 등 공공시설을 정원으로 만들었다. 지방도시 소멸을 막을 수 있는 생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외국 정원을 모방한 게 아니라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우리 실정에 맞게 재창조했다. 하룻밤 정원에서 묵는 가든 스테이도 인기다.”
올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 새롭게 선보인 ‘가든스테이’. 하룻밤 숙박하면서 58만 평 정원을 오롯이 누릴 수 있는 숙박시설이다. 순천=김선미 기자
-정원이 복지란 뜻인가.
“동료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얘기했다. 우리는 단순히 정원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생태복지공간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생태복지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복지라고 상기시켰다.”
21세기 최고의 건축 이론가이자 조경가로 꼽히는 찰스 젱스가 디자인한 호수공원. 나무 데크는 순천을 흐르는 동천, 6개 언덕은 순천을 둘러싼 산을 형상화했다. 순천=김선미 기자
“빽빽하게 심었던 나무들을 정리하고 400여 개 간판을 떼어냈다. 사실 정원은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일이 어렵다. 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맞아 시민들이 이곳에서 쉼과 여유를 느리게 즐겼으면 한다.”
세계 3대 디자이너로 꼽히는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한 물 위의 정원. 순천=김선미 기자
순천만국가정원을 둘러보는 노관규 순천시장(가운데)과 최덕림 총감독(왼쪽).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제공
“공무원 조직은 부서 간의 보이지 않는 벽 때문에 각 부분을 연결하는 부분이 취약하다. 게다가 순환보직 원칙 때문에 지속가능한 행정도 어렵다. 각 부분을 연결하고, 조정하고, 협력하는 게 총감독의 역할이다.”
2012년 ‘순천만, 왜 창조인가’라는 제목으로 테드(TED) 강연을 펼쳤던 최덕림 총감독.
그는 포기하지 않고 일일이 만나 설득했다. 전봇대 283개를 뽑아내는 등의 결단과 노력 끝에 이제 순천만에는 연간 3000마리가 넘는 흑두루미가 날아든다. 20년 전 20만 명 수준이던 순천만 습지의 연간 관광객은 이제 300만 명으로 불어났다.
가을이 무르익을 때 순천만습지의 전경.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제공
“2008년 당시 노관규 순천시장은 ‘대한민국 생태수도 순천’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순천에 정원을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래서 독일에서 정원가로 활동하는 고정희 박사에게 자료를 요청했다. 그때 고 박사가 보내온 보고서에 한 장짜리 ‘정원박람회’ 내용이 들어있었다. 간부회의 때 발표하니 참석자 대부분은 지나쳤는데 노 시장이 그 부분을 다시 설명해달라고 했다. 노 시장은 이후 세계 30여 곳의 정원을 둘러본 뒤 정원에 대한 신념을 굳혔다. 순천만 생태를 보존하기 위해 정원을 조성하고, 그 부지를 이용해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연 것이다.”
정원도, 국제정원박람회도 생소했던 2013년 순천시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성공시켰다. 당시 행정안전부와 환경부가 외면할 때 유일하게 산림청이 지원했다. 최 감독은 부족한 예산을 ‘재활용’으로 채웠다. 고속도로 공사로 잘려 나갈 위기의 나무들을 옮겨와 심은 순천만정원은 2015년 국내 제1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되면서 지금의 국내 ‘정원 열풍’을 이끌게 됐다.
홍수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저류지를 녹지공간으로 바꾼 오천그린광장의 야경.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제공
세계 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습지. 3000마리가 넘는 흑두루미의 군무가 펼쳐지는 생태계의 보고다. 순천=김선미 기자
“그동안 문화유적에 의존하던 관광형태가 정원과 습지, 식물원 등 생태관광으로 변하고 있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고요한 자연을 찾게 돼 있다. 앞으로 새를 관찰하는 탐조 관광이 활성화하면 순천만이 세계적으로 더 크게 부각될 것이다.”
-앞으로 계획은….
“이전에 해오던 강의를 계속할 것이다. 일 잘하고,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희망을 갖는 게 행복의 조건이라고 한다. ‘공무원은 철밥통’이라는 말이 듣기 싫어 열심히 일했다. 혁신적인 공직문화가 되도록 후배들에게 그간의 경험을 나누겠다.”
그가 말한 행복의 조건에 ‘공무원 덕림씨’를 대입해 보았다. 9급 공무원에서 시작해 열정을 쏟아부은 그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확산시켜 남도 끝자락 소도시를 살려냈다. 이제 70세를 바라보는 퇴직 공무원이지만 세계적 생태도시를 만들겠다는 희망을 갖고 매진한다. 수많은 관료와 학자들이 지방소멸의 미래를 예측하지만 제2, 제3의 ‘공무원 덕림씨’들이 뒤를 잇는 한 그 미래는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