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거나 혹은 직접 느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정을 들어 보면 공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큰 안타까움을 느낀다. 나와 직장, 그리고 일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프레임에서 이해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전설의 수문장’을 쓴 작가이자 40년 넘는 경력의 호텔 도어맨 권문현 씨는 은퇴한 해에 다시 다른 특급호텔에서 일자리를 제안받았다. 이는 그가 어딘가에 소속돼 있는 ‘직장인(office worker)’이 아닌 고객에게 가치를 더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진 독립적인 ‘직업인(professional)’이었기에 가능했다. 직업인은 직장을 떠나더라도 다양한 기회를 제안받을 가능성이 ‘직장인’에 비해 훨씬 높기 마련이다.
재택과 하이브리드 근무가 확산되면서 이제 근무 시간을 조건으로 고용 계약을 맺는 정규직 형태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 대신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프로젝트 수행을 하는 형태는 늘어나게 될 것이다. 즉 ‘일자리’보다 일할 수 있는 ‘프로젝트 기회’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를 살게 되는 것이다.
직업인은 주도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자기만의 전문성, 즉 자기 직업의 미래 가치를 높이는 사람들이다. 직업인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직장에서 ‘시켜주는’ 교육이나 출장 이외에도 자기만의 전문성 개발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 돈을 투자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만들어가는 자기만의 직업 가치는 결국 훌륭한 주식과 마찬가지로 이후 나에게 더 큰 경제적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기업이 연구개발을 하고, 사람들이 주식에 투자하는 것을 당연시하면서 스스로의 직업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투자에 인색했다면 다시 생각해 보길 바란다. 직업은 직장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도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기업은 ‘직장인’들의 과거 기여 가치에 대해 연봉이나 인센티브와 같은 제도를 통해 ‘보상’하고 미래 기여 가치에 ‘투자’한다. 과거 기여에 ‘투자’하는 곳은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몇 년을 회사를 위해 고생했는데…”라는 말은 회사가 내게 밀린 보상이 있거나 관련 법을 어겼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지금 시대에 일과 나와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으로서 나를 바라보고, 나의 미래 가치를 만들기 위해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연구개발을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다. 장기 투자를 통한 복리의 마법은 주식뿐 아니라 직업 만들기에도 적용된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