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작은거인 ‘별리’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작은거인 2집은 불멸의 작품이다. 한국 록 음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하드록 앨범이다. 작은거인은 무당, 마그마와 함께 한국에서 헤비메탈이 등장하기 이전 가장 강렬한 소리를 들려줬던 밴드였다. 특히 작은거인의 두 번째 앨범은 첫 앨범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뛰어난 사운드의 발전을 이루었다. 김수철은 한국 록 음악을 담는 녹음 기술이 낙후됐단 생각으로 아예 일본인 엔지니어를 초빙해 앨범을 완성했다. 그렇게 한 장의 걸출한 록 앨범이 탄생했다.
‘새야’나 ‘어쩌면 좋아’는 기타 영웅 김수철의 재능이 그대로 드러나는 강력한 하드록 트랙이다. 1집에도 수록된 ‘일곱 색깔 무지개’를 비교해 들으면 1집과 2집의 차이는 극명하다. 사운드의 질감이 월등히 좋아졌고, 음악적 역량도 만개했다. ‘경음악’이라 표시된 연주곡 ‘어둠의 세계’는 ‘경(輕)’이란 표현이 무색하게 심오하다. 이런 명곡 사이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노래가 있다. 앨범의 시작을 여는 ‘별리’다. 이른바 ‘국악가요’의 시초 정도로 이야기되는 곡이다.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함께 김수철은 마치 창을 하듯 구슬프게 노래한다.
앨범이 나온 건 1981년. 이전부터 김수철은 서구의 록 음악뿐 아니라 우리 음악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친구들과 록 음악을 연주하면서도 밤에는 혼자서 국악을 공부했다. 그 첫 결과물이 ‘별리’였다. 비록 소품 성격의 짧은 노래였지만 여기에서부터 김수철의 창대한 미래가 예견돼 있었다. 이후 솔로로 데뷔한 김수철은 ‘못다 핀 꽃 한 송이’로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가 됐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았다. ‘인기’보단 자신의 ‘음악’을 하는 게 더 중요했다.
‘황천길’에 수록된 ‘풍물 1989’는 제목 그대로 우리 풍물과 서구 록 음악이 만난 말 그대로의 접목이었다. 2002년에는 전기 기타를 이용해 ‘기타 산조’를 완성했다. 이는 김수철의 원대한 꿈을 향한 진보, 즉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이었다.
김수철은 3년 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 공연에 대한 꿈을 밝혔다. 이제 그 꿈이 이루어지게 됐다. 김수철은 10월 11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동서양 악기가 어우러진 100인조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올라 자신의 음악을 연주한다. 김수철은 우리만의 문화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또 자신처럼 음악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40년 넘는 세월 우직하게 한길을 걸어왔다. ‘별리’의 뒤를 받치던 어쿠스틱 기타 하나가 이제는 100개의 악기가 돼 돌아왔다. 이 위대한 예술가에게 주어진 자그마한 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