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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의사 공학자 양성 모델 마련할 때다[동아시론/김하일]

입력 | 2023-09-26 23:33:00

의대 기초의학교실 통한 의사 과학자 양성 한계
AI 등 기술과 의료 접목 위해 의사 공학자 절실
최고 인재들, 의공학 이끌 수 있게 전략 수립해야



김하일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의사 과학자의 양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겁다. 대통령도 의사 과학자 양성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의학계와 과학기술계에서는 의사 과학자 양성에 다양한 의견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냉정하고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은 1964년 국립보건원(NIH) 주도로 MSTP(Medical Scientist Training Program)를 시작했다. 현재 미국은 전체 의사의 2% 이상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의사 과학자로 양성되고 있다. 우리나라 의대는 전통적으로 기초의학교실에서 의사 과학자를 양성했다. 하지만 기초의학을 지원하는 의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기초의학교실을 통한 의사 과학자 양성 시스템은 붕괴 위기에 처해 있다. 2005년 의학전문대학원의 도입과 함께 시도된 미국식의 MD-PhD 과정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는 데 한계를 보였고, 제도만 도입하고 실제 교육에서는 기존의 임상 위주의 교육을 그대로 한 것이 원인이다. 연구중심병원을 비롯한 다수의 연구 사업은 소기의 성과를 냈지만 의사 과학자를 양성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결국 교육의 혁신과 신규 인력의 유입을 촉진하는 방안 없이 재정 지원만으로는 의사 과학자를 양성하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KAIST는 의사를 대상으로 한 박사과정 프로그램인 의과학대학원을 2006년부터 시작하였다. 의과학대학원은 꺼져 가는 의사 과학자 양성의 불씨를 살리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16년간 200명 이상의 의사 과학자를 양성하고, 다수의 스타트업 기업이 탄생했다. KAIST 의과학대학원과 유사한 의사 과학자 양성 프로그램이 연세대 의대, 서울대 의대에도 설립되었다. 특히 부속병원과 연계하여 전공의 과정에서 의사 과학자로 진로를 유도해 박사과정으로 진학하도록 하여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GIST, 포스텍, UNIST도 의과학대학원을 설립하여 학생을 모집하고 있다.

생명과학에 비해 공학 분야에서 의사 공학자의 양성은 아직 요원하다. 반도체, 인공지능(AI), 신소재 등 다양한 공학 분야의 발전된 기술을 의료산업에 접목하기 위해서 의사 공학자의 양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미 하버드대 의대는 1970년에 기존의 의대 과정과 별도로 HST(Health Science & Technology)라는 공학 기반의 의대 과정을 매사추세츠공대(MIT)와 공동으로 시작하였다. 일리노이주립대는 2018년 공대 기반의 칼일리노이의대를 신설하였다. 뉴욕대 의대는 2019년 4년의 의대 교육과정을 3년으로 줄이고, AI 등 다양한 공학 연구를 접목하는 센추리21 과정을 시작하였다. 이들 교육과정의 특징은 이공계 대학에서 이미 과학에 대한 교육을 충분히 받은 학생을 선발하고, 의대에서는 통합적인 교육으로 시간을 단축하고, 공학과 의학의 융합 연구를 학생 때부터 시작하게 하는 것이다.

미국이 이미 오래전부터 체계적으로 의사 공학자를 양성해온 것에 비해 우리 의학계는 아직도 이에 대한 준비가 없다. 물론 개인적으로 의대를 졸업하고 공학 분야에서 공부를 한 선구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체계적인 양성 과정은 없다. 하버드대 의대나 뉴욕대 의대와 같은 혁신적인 교육과정을 우리 의대에 직접 도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특히 현재와 같이 필수 의료인력의 부족이 심화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KAIST 의과학대학원도 초기부터 생명과학 못지않게 의사 공학자도 양성하고자 노력을 하였으나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소수의 학생들이 공학 분야의 박사과정을 전공하였으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기존의 의학 교육을 받은 의사들이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적응이 쉬웠지만, 공학 분야에서는 기본 소양이 부족하여 적응하기 어려웠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의대 교육과정에서부터 공학적인 교육을 시작해야 공대 박사과정에서 전공이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이런 까닭에 최근 KAIST와 포스텍은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을 설립해 의사 공학자를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에 비해 많이 늦었지만 괜찮다. 미국의 제도를 답습하지 말고, 우리나라 상황과 문화에 맞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의대와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이 서로의 장점을 살리고 파괴적 혁신을 통해 한국형 의사 과학자, 의사 공학자 양성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이공계를 이탈하여 의대에 진학한 최고의 인재들을 다시 의과학, 의공학 분야로 이끌어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 과학자, 의사 공학자를 양성할 수 있는 국가적 정책의 수립과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김하일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