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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잃은 슬픔엔… 그저 공감하고 분노할뿐

입력 | 2023-09-28 01:40:00

[한시를 영화로 읊다]〈67〉자식 잃은 부모 위해 쓴 시



영화 ‘아들’에서 올리비에(왼쪽)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라울에게 분노를 터뜨린다. 엔케이컨텐츠 제공


한시에서 자식 잃은 슬픔을 적은 작품을 ‘곡자시(哭子詩)’, ‘도자시(悼子詩)’, ‘실자시(失子詩)’라고 부른다. 당나라 한유는 친구 맹교를 위해 장편의 ‘실자시’를 써준 적이 있다. 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맹교는 이 무렵 어린 세 자식을 연이어 잃고 비탄에 빠져 있었다. 스스로 쓴 ‘실자시’에서 모진 서리에 피지도 못하고 진 꽃봉오리에 죽은 자식을 빗댄 바 있다(‘杏殤’). 한유는 그런 친구를 대변해 하늘의 섭리에 대한 원망을 위와 같이 표현한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 역시 자식 잃은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다. 자식 잃은 부모가 흘린 눈물은 저승까지 영향을 미쳐 땅의 신마저 슬퍼하고, 땅의 신은 신령스러운 큰 거북을 시켜 하늘에 어린 자식이 죽은 이유를 묻게 한다. 하늘은 자식의 죽음이 부모에게 징벌을 준 것도 아니고, 자식의 유무로 기뻐하고 슬퍼할 것도 없다고 답한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맹교가 슬픔을 거두었단 결말이다. 자식이 죽은 뒤 자식이 없던 때로 돌아간 것뿐이라고 했던 춘추시대 위(魏)나라 동문오의 일화를 연상시킨다(‘列子’ 力命). 맹교가 이 시로 자식 잃은 슬픔을 이겨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 ‘아들’(2002년)에는 맹교와 달리 자식 잃은 분노를 터뜨리는 아버지가 나온다. 주인공 올리비에는 자식을 잃은 뒤 아내와도 헤어진다. 청소년을 위한 재활교육센터에서 목공을 가르치는 올리비에는 이곳에서 아들을 죽인 라울과 조우한다. 올리비에는 라울을 가르치며 애써 감정을 억누르다 라울에게 결국 속내를 드러내고 만다. 라울은 올리비에가 자신이 죽인 아이의 아버지란 사실에 놀라 도망가고, 흥분한 올리비에는 라울을 붙잡은 뒤 목을 조르려다 이내 냉정을 되찾는다. 두 사람이 함께 목재를 옮기고 묶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올리비에는 자식 잃은 슬픔을 극복할 수 있을까.

시인은 맹교보다 17세 아래였다. 나이 많은 벗을 진심으로 위로한 시인 역시 훗날 자식 잃은 슬픔을 견디기 어려웠다. 좌천돼 쫓겨나는 길에 죽은 막내딸 한나를 두고 “네가 죄 없이 죽은 건 내 죄 때문이니, 평생 부끄럽고 가슴 아파하며 눈물 흘리리라(致汝無辜由我罪, 百年慚痛淚闌干)”(‘去歲自刑部侍郎, 以罪貶潮州刺史……’)라며 애통해했다.

자식 잃은 부모를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시도 영화도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저 자식 잃은 슬픔에 공감하고 함께 분노할 뿐이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