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읊다]〈67〉자식 잃은 부모 위해 쓴 시
영화 ‘아들’에서 올리비에(왼쪽)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라울에게 분노를 터뜨린다. 엔케이컨텐츠 제공
한시에서 자식 잃은 슬픔을 적은 작품을 ‘곡자시(哭子詩)’, ‘도자시(悼子詩)’, ‘실자시(失子詩)’라고 부른다. 당나라 한유는 친구 맹교를 위해 장편의 ‘실자시’를 써준 적이 있다. 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이어지는 내용 역시 자식 잃은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다. 자식 잃은 부모가 흘린 눈물은 저승까지 영향을 미쳐 땅의 신마저 슬퍼하고, 땅의 신은 신령스러운 큰 거북을 시켜 하늘에 어린 자식이 죽은 이유를 묻게 한다. 하늘은 자식의 죽음이 부모에게 징벌을 준 것도 아니고, 자식의 유무로 기뻐하고 슬퍼할 것도 없다고 답한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맹교가 슬픔을 거두었단 결말이다. 자식이 죽은 뒤 자식이 없던 때로 돌아간 것뿐이라고 했던 춘추시대 위(魏)나라 동문오의 일화를 연상시킨다(‘列子’ 力命). 맹교가 이 시로 자식 잃은 슬픔을 이겨냈는지는 알 수 없다.
시인은 맹교보다 17세 아래였다. 나이 많은 벗을 진심으로 위로한 시인 역시 훗날 자식 잃은 슬픔을 견디기 어려웠다. 좌천돼 쫓겨나는 길에 죽은 막내딸 한나를 두고 “네가 죄 없이 죽은 건 내 죄 때문이니, 평생 부끄럽고 가슴 아파하며 눈물 흘리리라(致汝無辜由我罪, 百年慚痛淚闌干)”(‘去歲自刑部侍郎, 以罪貶潮州刺史……’)라며 애통해했다.
자식 잃은 부모를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시도 영화도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저 자식 잃은 슬픔에 공감하고 함께 분노할 뿐이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