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시의 한 편도 4차선 도로에 물이 가득 차 차량들이 갓길 쪽으로 비켜서 한 줄로 조심스레 이동하고 있다. 기후변화 등으로 최근 폭우가 잦아진 가운데 당국의 늑장 대응과 낡은 배수 체계가 홍수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지난달 29일 오전 8시 30분. 미국 뉴욕시 라과디아 공항으로 향하는 편도 4차선 도로 한 쪽 배수구에서 분수처럼 물이 샘솟기 시작했다. 시간당 5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탓에 물은 순식간에 불어났고 도로는 거의 잠겼다. 기자가 탄 택시를 비롯해 차들은 갓길 쪽으로 이동해 한 줄로 기어가듯 할 수밖에 없었다. 운전사 라치앗 씨는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며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지 모르겠다”며 곤혹스러워 했다.
인근의 차들이 여전히 우왕좌왕하고 있는 가운데 30분이 지나서야 휴대전화에 ‘생명에 위협이 될 만한 홍수 위험이 있으니 가급적 이동하지 말라’는 당국의 재난 경고 메시지가 왔다. 이미 대부분의 직장인, 초중고 학생들이 출근과 등교를 시작한 후였다. 이날 뉴욕시에서만 최소 150여 개 학교가 침수 피해를 겪었다.
그 사이 맨해튼, 브루클린, 퀸스 등 뉴욕시 곳곳의 지하철역과 도로가 침수됐다. 라과디아 공항의 터미널 A는 물이 들어차 전면 폐쇄됐다. 같은 날 오후 11시경 가까스로 문을 열었지만 일부 승객이 맨발로 침수 구역을 지나는 모습이 소셜미디어에 등장했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시의 한 지하철역 계단에 갑작스레 흘러든 빗물이 폭포처럼 떨어지고 있다. 소셜미디어 캡처
177mm의 폭우가 집중된 브루클린에서는 반지하 아파트, 식당들이 대거 침수 직격탄을 맞았다. 뉴욕 외식기업 QB호스피탈리티의 토니 박 사장은 “브루클린 매장은 새 건물인데도 물이 가득 들어와 영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이 이날 낮 12시에야 기자회견을 열고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등 뒷북 대응으로 일관한 것도 비판을 받고 있다. 자녀가 브루클린에서 맨해튼 고등학교로 지하철 통학을 한다는 한 학부모는 기자에게 “기록적 홍수라면서 왜 학교를 열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배수 체계 개선에 시간이 걸린다면 경고 체계라도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현재 뉴욕시의 배수 체계로는 시간당 1.75인치(40.8mm)의 비만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 시간당 2인치 이상이 지속적으로 내려 하루 200mm 가까운 폭우가 쏟아진 것이 곳곳에서 침수 피해를 키웠다. 캐시 호컬 뉴욕 주지사는 같은 달 30일 “불행히도 폭우가 ‘뉴 노멀’(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