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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 2200권 책이 만든 ‘작은 기적’[작은 도서관에 날개를]

입력 | 2023-10-03 03:00:00

전북 완주군 ‘구름골 작은도서관’
주민 2000명의 작은 산골 동네… 111번째 작은 도서관 들어서자
오가며 들러 책읽는 사랑방으로… “소외된 듯한 곳에 큰 선물 같아”



전북 완주군 운주면 ‘구름골작은도서관’에서 지난달 26일 운주초등학교 학생들이 구연 동화를 듣고 있다. ‘구름골작은도서관’은 운주초등학교, 운주중학교 등 학생들이 하교한 뒤 즐길 수 있는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유소영 양(12)은 “학교 수업이 끝난 뒤 갈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이젠 도서관에서 놀아야겠다. 도서 검색용 컴퓨터로 읽고 싶은 책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도 좋다”며 반겼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제공


‘구름골’이란 애칭처럼 산골 사이사이 구름이 가득했다. 종종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도서관으로 향하는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엄마 손을 꼭 잡고 달려온 아이, 목욕탕 가다 발길을 멈춘 할아버지, 책이 보고 싶어 들른 귀촌인…. 전북 완주군 운주면에 지난달 26일 문을 연 ‘구름골작은도서관’은 아이들이 꿈을 키우는 어린이집이자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사랑방, 어르신들이 땀을 식히고 가는 마을회관이었다. 인구가 2000여 명에 불과한 작은 산골 마을에 구름골작은도서관이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김수연 목사(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는 지난달 26일 전북 완주군 운주면 ‘구름골작은도서관’ 개관식에서 “선진국이 되려면 국민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제공 

구름골작은도서관은 문화체육관광부와 KB국민은행의 후원을 받아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만든 111번째 도서관이다. 운주면 행정복지센터에 220㎡ 규모로 조성돼 책 2200여 권이 들어찼다.

“친구들 함께 책 읽을래요?”

기자가 이날 찾은 도서관에선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재해석한 그림책 ‘슈퍼 거북’(2014년·책읽는곰) 동화 구연이 열리고 있었다. 전교생이 24명뿐인 운주초등학교 학생들은 책으로 가득한 도서관에서 의자에 앉아 웃으며 동화 구연을 들었다. 유소영 양(12)은 “새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선생님과 함께 왔다”며 “앞으로 도서관에서 1주일에 3권씩 책을 읽으려 한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김현서 양(10)은 “책이 너무 많아서 신기하다. 평소 책을 잘 안 읽었는데 이젠 도서관에 자주 놀러 올 것 같다”며 수줍게 웃었다.

작은도서관 마련은 주민들의 숙원이었다. 운주면은 청정지역으로 유명해 귀촌 인구가 늘고 있지만 문화 시설이 부족한 상황이다. 완주군립중앙도서관까지 가려면 차로 30분이 걸리고, 영화를 보려면 롯데시네마 전주송천점까지 역시 차를 타고 40분을 가야 해 문화생활을 하기 쉽지 않았다. 주민들이 애용하던 운주초등학교 도서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출입이 막혔던 탓에 한동안 불편이 더욱 컸다. 최경태 운주면 기초생활거점조성사업 위원장은 “운주면은 1960년대 영화 세트장을 보는 듯 시간이 멈춰 있었다”며 “젊은 엄마 아빠가 아이와 시간을 보낼 곳이 특히 없었다”고 했다.

구름골작은도서관 개관을 특히 반긴 건 귀촌인들이다. 도시에서 생활하다 귀농 등으로 고향에 돌아온 이들에게 도서관은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다. 박용민 씨(52)는 “돈 벌러 청년 때 떠난 고향에 13년 전 돌아왔지만, 문화적으론 소외지역이라 아이에게 미안했다”며 “도서관이 생겼으니 시간이 될 때마다 와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도서관을 유치한 데엔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도 컸다. 유희태 완주군수는 자서전 ‘마음에 꿈을 그려라’(2008년·나침판)를 비롯해 7권의 책을 내기도 한 독서광이다. 유 군수는 “도서관은 지역사회의 문화 척도”라며 “작은도서관이 아이들과 어르신들의 웃음이 넘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남용 완주군의회 의장은 “도서관이 주민들이 교류하는 장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김수연 목사는 “지혜가 담긴 책을 읽으면 인생이 아는 길을 운전해 가는 것처럼 여유로워진다”며 “무엇이든 짓는 것 못지않게 유지하는 게 중요한 만큼 도서관 운영에도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작은도서관을 지역사회 문화공간으로”


이재근 KB국민은행장

이재근 KB국민은행장

“앞으로 200, 300호 작은도서관을 조성하고 싶어요. 작은도서관이 지역사회의 문화공동체를 위한 공간으로 발전하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이재근 KB국민은행장(57·사진)은 2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KB국민은행은 2008년부터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을 통해 작은도서관 설치와 운영을 지원해왔다. 최근엔 전북 완주군 운주면에 111번째 도서관을 열었다. 앞으로도 지원을 이어가 더 많은 도서관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KB국민은행은 올해 말까지 작은도서관 5곳을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 행장은 “청소년들이 책과 함께 행복한 미래를 꿈꾸길 바란다”며 “작은도서관은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매개체’”라고 강조했다.

“작은도서관은 문화 소외지역 주민과 아이들에게 중요한 문화 공간이 되고 있어요. 주민들과 어린이, 청소년이 독서를 하는 곳이자 지역사회 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주민들 간의 소통, 자녀와의 놀이공간으로 지역사회 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죠.”

KB국민은행은 온라인으로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작은도서관 전자도서 서비스를 구축했다. 이 행장은 “여러 개의 점이 모여 하나의 선이 되는 것과 같이 장기적 관점에서 작은도서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행장은 독서의 힘을 강조했다.

“요즘 ‘혁신에 대한 모든 것’(청림출판)을 읽고 있어요. 실제 사례를 통해 혁신의 본질적 특성과 작동 방식을 풀어낸 책으로, 혁신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고 있죠. 독서는 새로운 시대를 배우고 나를 성장시킵니다.”
완주=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