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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새샘]무너진 부동산 통계 신뢰… 누가 책임질 것인가

입력 | 2023-10-02 23:39:00

이새샘 산업2부 차장


“지금 집을 사는 건 실수요자가 아니다. 투기 세력이 가격 불안을 일으키는 것이다.”

“수도권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 지금은 저금리로 인한 ‘가(假)수요’가 작용하는 것뿐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공무원들을 만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질문을 하다 보면 꼭 이런 대답이 나오곤 했다. 저금리로 인한 것이든, 투기 세력에 의한 것이든 누군가가 더 비싼 값에 집을 사고 있고, 그래서 집값이 오르는 건 당시의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런데도 마치 그 현실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이런 대답에 답답함을 느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최근 감사원이 내놓은 당시 부동산 통계 감사 결과를 보고 그때의 ‘집단 현실 부정’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그 같은 현실 부정이 자신들의 실책과 과오를 알면서도 차마 기자에게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는 고충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감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 관계자나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은 이 ‘현실 부정’을 진짜 현실로 만들어 정당화하기 위해 상당히 적극적으로 행동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들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한국부동산원 주택가격 동향 조사 절차를 보면, 표본이 되는 아파트가 매주 새로 거래되기 어렵다 보니 유사 거래 등을 고려해 가격을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사원 개인 견해가 개입될 여지가 있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객관성과 정확성 확보 차원에서 내부 보고 등 절차를 거쳐 현장 조사원 외 제2, 제3자가 가격을 조정할 수도 있다고 한다. 청와대나 국토부가 관여한 것 역시 이 같은 ‘조정’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시 부동산원 직원들이 그 과정에서 증거자료를 모아 제보까지 할 정도로 압박감을 느꼈다는 점이다. 직원들은 청와대와 국토부, 다시 부동산원으로 이어지는 위계 아래에서 매주 한 번 발표되는 통계를 3번씩 다시 집계·분석해 보고해야 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저희 라인 다 죽는다’는 읍소 아닌 읍소와 ‘조직과 예산을 날려버리겠다’는 협박 같은 압박이 오갔다고 하니,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더 컸을 것이다.

사실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은 집값이 몇 퍼센트 올랐나보다는 부동산 시장 전체 흐름과 향방을 보는 데 활용하는 통계다. 조사 간격이 너무 짧고 표본 조사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거래 신고가 통상 거래 한 달 내에 이뤄지고, 뒤에 취소되기도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소수점 한두 자릿수를 높이거나 낮추겠다고 수십 명이 수년간 매달렸다. 실체도 없는 적과 싸운 셈이다.

부동산 시장은 수천, 수만 개 거래의 합이다. 어떤 큰 흐름이 생기면 이를 제어하기는 매우 어렵다. 시장의 흐름과 싸워봤자 이길 수도 없고, 애초에 적대시할 대상도 아니다. 이렇게 적이 될 수 없는 것을 적으로 삼아 싸우면서 결국 문재인 정부는 시장의 큰 흐름에 맞는 정책을 내놓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은 국민들이 짊어져야 했다. 이제 통계에 대한 무너진 신뢰는 또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부동산 시장을 적으로 삼았던 그들에게 묻고 싶다.



이새샘 산업2부 차장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