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선선하고, 설악에 단풍이 우거지는 때, 1년 중 가장 놀기 좋은 시기에 국경일이 붙어 있다. 아니 있었다. 10월 1일 국군의 날과 3일 개천절이다. 지금은 10월 1일이 공휴일이 아니지만, 1991년까지는 최고의 황금연휴였다.
국군의 날과 개천절이 이어진 건 순전히 우연이지만, 생각해 보면 운명적인 만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국가와 군대는 한 몸이다. 군대가 없으면 국가가 유지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군대의 창설과 유지가 국가의 탄생 목적이었다.
국가의 탄생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설이 있다. 국민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서라는 주장도 있고, 소수의 지배 집단이 다수를 억누르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있다. 국가의 존재 이유와 의무가 한 가지만은 아니며, 인간은 자신이 만든 모든 제도와 도구를 악용하는 놀라운 재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탄생의 본질은 군대, 즉 국방이다.
옛날 사람들이라고 바보가 아니다. 이유 없이 복종하고 굴종하지 않는다. 이런 강압과 굴종조차 정당한 체제로 받아들였던 이유는 우리를 보호할 힘, 무력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고, 누군가에게 살해되거나 노예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선동가들은 언제나 군대를 비난하고, 국가의 의무를 땀 냄새 나는 역할보다 달콤한 이익, 당장 내 손에 쥐어지고, 눈을 감으면 향내가 떠오르는 이익으로 변질시키고자 한다. 국방비를 없애면 오만가지 복지정책이 가능하다. 병역이 노예 생활과 무엇이 다른가? 전쟁은 노인이 결정하고, 전장에서 죽어 가는 건 젊은이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점토 문서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에도 이런 주장들이 소개되어 있다. 아마 이런 주장을 했던 사람은 우리가 아는 경우보다 몇만 배는 더 많을 것이다. 대부분이 파멸하고, 그들의 문명은 땅에 묻혔기에 덜 알려졌을 뿐이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