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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중 짐 챙기러 아내 집에…헌재 “주거침입 아냐”

입력 | 2023-10-03 09:18:00


이혼을 청구한 아내가 출입금지를 통보했다는 이유 만으로 출입한 남편에게 주거침입죄를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단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청구인 A씨가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했다고 3일 밝혔다.

A씨는 2021년 9월 별거 중인 아내 B씨가 머무르는 집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주거침입을 했다는 피의사실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에 A씨는 “부부가 함께 살던 주택에 들어가지 못할 정당한 이유가 없다”며 “아내 동의 없이 집에 들어갔다고 해 주거침입으로 볼 수 없고 사실상 평온을 해치지도 않았다”며 처분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A씨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며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우선 헌재는 사건 당시 A씨가 주택의 ‘공동거주자’ 지위에 있었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A씨는 B씨와 10년 넘는 혼인생활을 유지해 왔고 다른 지역에서 일하면서도 휴일에는 부부가 함께 살던 주택에서 생활했다. 짐도 여전히 해당 주택에 보관돼 있었고 주택 매매대금의 상당 부분도 A씨가 마련했다고 한다.

B씨가 A씨에게 집에 오지 말 것을 요청한 것은 이번 사건이 있기 불과 2주 전으로, 당시 B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자가 격리를 이유로 A씨의 출입을 거절했다.

헌재는 “B씨가 A씨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했다거나 집에 일방적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부관계를 청산하고 A씨가 주택에 더 이상 살지 않기로 하는 명시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가 공동거주자 지위에서 이탈했다거나 배제됐다고 볼 만한 사정도 찾을 수 없다”며 “A씨가 임의로 집에 들어간 행위는 주거침입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소유예 처분의 바탕이 된 피의사실은 A씨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는 점이다. 하지만 비밀번호는 공동거주자로서 자연스럽게 알고 있던 것일 뿐 불법적이거나 은밀한 방법으로 취득한 것이 아니라고 헌재는 설명했다.

헌재는 “A씨는 B씨가 2주간 격리를 마치자 주택에 들어가려 한 것으로 보이고 집에 한동안 머무르다가 B씨가 퇴근 후 경찰을 대동하고 오자 안에서 문을 열어줬다”며 “주거침입죄의 보호법익인 ‘사실상의 평온’이 해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