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면 민족도 헌신짝처럼 버리는 북한 핵무기 개발은 30년 넘게 변함없이 추구
박용 부국장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보인 북한 선수단의 행동은 201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남북 단일팀의 추억을 갖고 있는 이들에겐 무척 낯설게 느껴진다. 단일팀 유니폼을 입고 함께 땀을 흘렸던 그들이 5년 만에 딴사람이 됐다. 한 팀으로 뛰었던 북 여자농구 선수들은 우리 선수들을 차갑게 외면했다. 사격에서 우리 선수에게 져 은메달에 머문 북 선수들은 시상대에서 함께 사진조차 찍길 꺼렸다. 북 선수단 관계자는 뜬금없이 기자들에게 정식 국호로 불러 달라고 몽니를 부렸다. 그러면서 북 주민들에게 틀어준 중계 영상에선 우리를 ‘괴뢰’라고 불렀다.
북한의 태세 전환은 의도적이니 우리끼리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 5년 전 북-미 협상 국면에서 열린 직전 대회의 ‘북한’ 이미지를 지우려는 ‘낯설게 하기’ 선동이며, 국제적 관심이 쏠리는 아시안게임에서 남과 북이 갈라섰다는 걸 강조하고 한반도 긴장 상황을 세계에 주지시키려는 선전 술책이다. 우리에게 ‘북측’이 아닌 정식 국호를 써달라고 요구하는 건 이젠 같은 민족이 아니라 ‘남남’으로 생각하라는 협박성 설정이다. 그들에게 피를 나눈 민족 개념은 김정은 정권이 지배하는 그들의 ‘조국’보다 낮은 하위 개념이며, 선전선동을 위해선 언제든지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전술적 도구일 뿐이다.
같은 민족끼리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데, 돌이켜보면 그들은 그랬다. 북한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됐던 2017년 뉴욕 특파원에 부임한 뒤 만난 북한 외교관들은 우리 기자들의 간단한 질문에도 입을 열지 않던 얼음장 같은 이들이었다. 2018년 북-미 협상 국면에선 지령이라도 받은 듯이 달라졌다. 먼저 말을 걸고 귀임 날짜나 가족 관계와 같은 사적인 질문도 던졌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우리 단체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 와인잔을 기울였다. 북-미 협상이 결렬되자 그들의 표정은 다시 굳어졌다. 1년 만에 말도 섞기 싫은 원수처럼 대하다가 살가운 혈육을 만난 것처럼 돌변할 수 있는 게 그들이다.
북한이 30년 넘게 ‘개가 짖어도 마차는 간다’며 마이웨이를 고수할 수 있게 시간을 벌어준 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한 한미의 대북 정책이었다. 내년 11월 미 대선에서 한미 동맹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해 따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귀 가능성이 나오는 상황에서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하며 2017년 한반도 긴장 상태로 시곗바늘을 되돌리려는 건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가을이 오면 표범의 털이 아름답게 변해 ‘표변(豹變)’이라고 하는데, 필요하면 민족도 헌신짝처럼 버리는 북의 표변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박용 부국장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