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민항기용 엔진 등 수출 막자 中, 자체 개발로 국내 부품망 키워 C919기 첨단산업 굴기 상징 돼 中반도체 장비 국산화율 매년 증가… AI-양자컴 등 기술자립 가속도
8월 29일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제6회 중국첨단소재산업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중국의 중형 여객기인 ‘C919’ 모형을 관람하고 있다. C919의 항속거리는 약 4000~5500km, 좌석 수는 158~192석이다. 하얼빈=신화 뉴시스
“미국의 중국 제재가 중국 민항기 산업의 발전을 도왔다.”
지난해 12월 중국 상하이항공기설계연구소의 관계자가 한 말이다. 중국이 자체 개발한 여객기 ‘C919’의 상업 운항을 앞둔 상황에서 나온 평가였다. 미국의 중국 민항기 제조 산업에 대한 제재 이후 오히려 중국의 항공기 제조 경쟁력이 강화됐다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견제 속에서도 항공기,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 자생력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중국 ‘기술 독립’의 상징 된 항공기
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부르나이 항공사 갤럽에어는 중국 코맥(COMAC)에 C919 15대를 주문했다. 중국 항공업계에서 자체 여객기를 수출한 첫 사례다.C919는 2008년 항공 제조업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로 개발을 시작한 중형 여객기다. 군용기를 만들던 5개 항공사가 합작해 만든 국유 여객기 제조기업 코맥이 개발을 총괄했다. 하지만 핵심 부품들은 미국과 유럽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엔진은 미국과 프랑스 합작사인 CFM인터내셔널의 ‘LEAP’를 쓴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자 C919 개발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엔진 기술의 중국 수출을 불허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았다. 2021년 미 상무부는 코맥을 아예 수출 규제를 위한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중국군과의 연계가 의심되고 미국의 기술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미국 기업이 부품을 팔기 전엔 반드시 허가를 받도록 했고 코맥에 대한 투자도 금지됐다.
코맥은 중국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일부 부품에 대한 국산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수십 개에 불과했던 C919 관련 자국 업체 수가 200여 개로 늘어났다. 동체와 날개, 전장, 소재 등의 부품 공급망이 탄탄해졌다는 평가다. 외부 견제가 커지면서 자국 내 생태계가 보다 빨리 만들어진 것이다.
5월 말 중국 둥팡항공이 C919로 첫 상업비행에 나서자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과의 무역 긴장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자국의 기술 자급자족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잉과 에어버스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 1년 만 14%p 올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6월 “중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칩을 살 수 없다면 자체 개발에 나설 것이다. (봉쇄는) 중국의 반도체 자립만 도와줄 뿐”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의 반도체 자립 능력을 얕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장비 국산화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국제반도체산업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35%로 2021년보다 14%포인트 올랐다. 조은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의 기술 자립은 이제 불가피한 선택이 됐다”며 “미국 제재는 중국의 장비 국산화를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봉쇄 정책 맞서 기술투자 속도 내는 중국
중국은 내수를 바탕으로 세계 기술 및 자원을 국내로 빨아들이겠다는 ‘쌍순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3월 시 주석이 직접 관할하는 공산당 의사결정기구에 중앙과학기술위원회를 신설했다. 원천기술 강화를 위한 예산도 공격적으로 늘렸다. 중국의 기초 분야 예산은 지난해 57억7299만 위안(약 1조700억 원)에서 올해 78억6236만 위안으로 36.2% 늘었다. 증가율로는 모든 예산 항목 중 가장 높다.
중국이 대부분 주요 기술 분야에서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는 분석도 있다. 호주 전략정책연구소가 올 2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AI, 양자, 국방 등 주요 유망 기술 44개 부문에서 중국이 37개 앞서고 미국은 7개가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각 부문별 논문 수와 피인용 횟수 등을 분석한 결과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