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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에 맞선 뮤비-공권력 춤추게 한 CG… 예술,역사를 소환하다

입력 | 2023-10-04 03:00:00

한지윤씨 加 ‘모멘타 비엔날레’ 감독
박해 당한 ‘加 이주민 음악’ 상상 복원
식민지 베트남의 차별-혼란 등 다뤄
韓 “관객들 고정관념서 벗어나길”



캐나다 ‘모멘타 비엔날레’에 참여한 독일 작가 히토 슈타이얼이 몬트리올 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설치 작품 ‘소셜심’(2020년).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든 경찰들이 전 세계에서 수집한 공권력에 의한 폭력 관련 정보와 연계해 춤추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이를 통해 공권력에 의한 폭력을 비판한다. 모멘타 비엔날레 제공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캐나다 몬트리올의 한 미술 전시장인 ‘복스’. 영상 작품 속 인물은 록 음악을 연주했지만 가사는 프랑스어인듯 영어인듯 생소한 언어, ‘아카디아어’였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 레미 벨리보는 “프랑스와 영국이 캐나다에서 식민지 쟁탈전을 벌일 때 강제 이주와 박해를 당한 (프랑스 출신 이주민) 아카디아인들의 1960년대 음악을 상상으로 복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도 아카디아인의 후손이라고 밝혔다.





● 잊힌 기억, 예술적 상상력으로 복원

현대미술에서 정체성은 끊임없이 논의되지만 대부분 아프리카, 아시아 등 원주민의 정체성을 다룬다. 벨리보가 다룬 아카디아인은 백인 중에서도 제국주의에 희생된 여러 공동체가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달 5일 개막해 이달 28일까지 열리는 캐나다 몬트리올 ‘모멘타 비엔날레’는 15개국 예술가 23명을 초청해 정체성 문제를 다각도로 다뤘다. 몬트리올 시내 16곳에서 개인전 형태로 열린 현장을 지난달 25∼29일 다녀왔다.

베트남 작가 투안 앤드루 응우옌의 설치 영상 작품 ‘조상의 유령이 되다’(2019년) 역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시절 베트남에 관한 생소한 역사를 다뤘다. 당시의 동남아라고 하면 흔히 서구 제국주의 문제가 떠오르지만, 작가는 아프리카의 세네갈 다카르로 향했다. 프랑스 식민지 세네갈 출신으로 베트남에 주둔했던 병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서였다.

작가가 주목한 건 세네갈 병사와 베트남 여성이 이룬 가정에서 태어난 후손들이 겪은 차별과 정체성 혼란이다. 총 4개 영상으로 구성된 작품은 이들의 사연을 낭독하는 장면, 이를 영상으로 재구성한 장면, 역사 속 실제 기록 영상과 사진으로 구성된다. 가운데 소파를 두고 커다란 스크린 4개가 관객을 둘러싸는 형태로 설치돼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생생한 이야기로 복원한다.





● “고정관념 벗어나 어우러지길”


올해 18회를 맞는 이번 비엔날레는 한국계인 한지윤 씨(36·사진)가 예술감독을 맡았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캐나다 몬트리올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그는 1920, 1930년대 초현실주의 사진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다. 프랑스 퐁피두센터 사진 부문 초청 연구원으로 파리와 몬트리올을 오가며 일한다. 그가 선정한 비엔날레 주제는 ‘가면극: 변신에 끌리다’. 예술가들이 고정된 정체성을 벗어나는 여러 방식을 탐구한다. 한 감독은 “가면극은 정해진 질서를 무너뜨리고 자신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한다”며 “관객들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장이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러 전시장에선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가면을 쓰듯 다른 존재가 되기를 시도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미국 작가 마라 이글은 유튜브에서 수집한 앵무새의 말소리를 대사로 활용한 애니메이션 ‘프리티 토크’(2023년)를, 캐나다 작가 마리옹 르사르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 그 폐해를 중세 이야기처럼 풍자한 영상 설치 작품 ‘후회의 소설’(2023년)을 선보였다.

국내 젊은 작가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독일 작가 히토 슈타이얼(슈타이에를)의 설치 작품 ‘소셜심’(202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일부 선보였던 멕시코 작가 나오미 링콘 가야르도의 ‘예감, 종말의 가면극 3부작’(2022년)도 눈길을 끌었다. ‘소셜심’은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든 경찰들이 세계에서 수집한 공권력에 의한 폭력과 관련된 정보와 연계해 춤추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이를 통해 공권력에 의한 폭력과 억압을 비판한다. ‘예감…’은 환경 위기, 성 소수자 문제 등을 주제로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만든 작품이다.

‘모멘타 비엔날레’는 1989년 시작돼 사진을 현대미술 장르로서 조명한 ‘무아 드 라 포토’(Le Mois de la Photo·사진의 달)가 전신이다. 현 디렉터인 오드레 제누아가 부임한 후 2017년 이름을 지금과 같이 바꿨다. 제누아 디렉터는 “영상을 포함한 여러 현대미술 영역으로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몬트리올=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