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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 뒤에서 목숨 갉아먹는 병과 싸우는 헐리우드 스타들[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입력 | 2023-10-11 14:00:00

‘쇼생크 탈출’ 명배우 모건 프리먼
‘검은 장갑 사나이’가 된 사연
겉은 화려하지만 병을 달고 사는 할리우드 셀럽들




미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십니까. 영어를 잘 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으로 모이십시오. 여러분의 관심사인 시사 뉴스와 영어 공부를 다양한 코너를 통해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해주시면 기사보다 한 주 빠른 월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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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중인 미국 여배우 섀넌 도허티가 무대에서 박수를 받는 모습. ‘90s Con’ 홈페이지   



Life doesn’t end the minute we get diagnosis. We still have some living to do.”
(인생은 암 진단을 받는 순간 끝나지 않는다. 아직 살아야 할 날들이 있다) 
암 투병 중인 미국 여배우 섀넌 도허티가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1990년대를 추억하는 행사 ‘90년대 콘퍼런스’(90s Con)에 참석한 도허티는 뇌수술로 짧은 머리에 모자를 쓴 모습이었습니다. 한 관객이 “암과 싸우는 이들에게 당신은 희망이 된다”라고 하자 다른 청중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보냈습니다. 도허티는 쑥스러운지 객석을 향해 빨리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연신 눈물을 닦았습니다.

도허티는 1990년대 선풍적 인기를 끈 드라마 ‘베벌리힐스의 아이들’에서 여주인공 ‘브렌다’ 역할로 출연한 배우입니다. 2015년 유방암 진단 사실을 밝혔을 때만 해도 대중은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후 회복 판정을 받았다가 2020년 암이 재발해 뇌로 전이돼 ‘stage four’(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뇌수술을 받기 위해 머리를 깎은 모습, 화학치료를 받는 모습 등 힘든 투병 과정을 소셜미디어에 꾸준히 올렸습니다. 삶에 대한 그녀의 진지한 모습에 대중은 감동했습니다. ‘디바 셀럽’(자기중심적인 여성 연예인)이어서 좋지 않았던 이미지까지 호감형으로 바뀌었습니다. “아직 살아야 할 날이 남아 있다”라는 담담한 말 속에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미국을 ‘셀럽의 천국’이라고 합니다.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그중에는 도허티처럼 심각한 질병을 앓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목숨을 위협하는 질병을 ‘life-threatening illness’(또는 disease)라고 합니다. 목숨까지는 아니어도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하는 질병을 ‘chronic disease’(만성질환)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단기적으로 아팠다가 낫는 병은 ‘acute illness’(급성질환)라고 합니다. 중대 질환을 가진 셀럽들을 알아봤습니다.

소셜미디어에 올린 동영상에서 ‘강직 인간 증후군’ 투병 사실을 밝히는 가수 셀린 디온. 셀린 디온 인스타그램 캡처



I’ve always been an open book.”
(나는 언제나 솔직했다)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로 유명한 여가수 셀린 디온이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병으로 인한 공연 취소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해 말 소셜미디어에 올린 동영상에서 ‘강직 인간 증후군’(stiff person syndrome)을 앓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으로 100만 명 중에 1, 2명꼴로 발생하는 희귀병입니다, 남성보다 여성에게 발병 소지가 큽니다. 온몸이 뻣뻣해지고, 극심한 고통의 경련이 찾아옵니다. 동영상 속의 디온은 말하는 것이 어눌하고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녀의 첫 마디입니다. ‘open book’은 ‘열려 있는 책,’ 즉 ‘모든 것이 공개된 상태’를 말합니다. ‘my life is an open book’이라고 하면 ‘나는 비밀이 없는 사람이다’라는 뜻입니다.

디온은 사생활에 대해 툭 터놓고 말하는 스타일입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강직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이제는 말할 준비가 됐다”라면서 자신의 병에 대해 말했습니다. 경련 때문에 노래를 부르는 것은 물론 걷기조차 쉽지 않다고 합니다. 디온의 고백에 격려가 쏟아졌습니다. “stay strong”(힘내라), “take care of yourself”(몸조리 잘해라), “hope you get better soon.”(곧 낫기를 바란다)

파킨슨병을 앓는 배우 마이클 J 폭스가 행사에 참석한 모습. 마이클 J 폭스 X 캡처.



If you pity me, it‘s never gonna get to me.”
(당신이 나를 동정한다 해도 나는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배우 마이클 J 폭스는 영화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의 성공 후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촬영 중 새끼손가락이 떨리고 어깨가 아픈 증상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노년층의 발병률이 높은 질환을 29세에 걸린 것입니다. 한동안 병에 걸린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영화를 찍었습니다.

폭스는 현실을 잊기 위해 술과 약물에 의존했습니다. 그러다가 발병 7년만인 1998년 투병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파킨슨병은 신경성 퇴행 질환으로 움직임이 서서히 느려져 나중에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 병입니다. 가끔 무대에 등장하는 그의 부자연스러운 말투와 행동, 걸음걸이를 동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폭스가 최근 애플TV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에서 한 말입니다. ‘get to’는 ‘거슬리다’ ‘괴롭히다’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동정에 상처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폭스 재단을 설립해 2억 달러를 모금하고 세계 최대 규모의 파킨슨병 치료약 연구기관으로 키웠습니다.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검은색 장갑을 끼고 무대에 오른 배우 모건 프리먼(왼쪽). 미국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 홈페이지



I won’t apologize for having fun while chronically ill.”
(만성질환을 가졌으면서 즐겁게 사는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겠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명배우 모건 프리먼은 왼쪽 팔을 거의 쓰지 못합니다. 2008년 영화 ‘다크 나이트’ 촬영 뒤 대형 교통사고로 ‘섬유근육통’(fibromyalgia)이 생겼습니다. 통증에 대해 “excruciating”(익스크루시에이팅)이라고 했습니다. ‘cruciate’는 ‘십자가에 못 박히다’라는 뜻입니다. 그 정도로 고통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왼손에 검은색 장갑을 끼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혈액 순환을 촉진해 고통을 완화해주는 압박 장갑입니다. 촬영 중에만 잠깐씩 벗는다고 합니다.

프리먼은 섬유근육통이 생긴 이후의 삶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쉬지 않고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골프도 열심히 칩니다. 왼손을 쓰지 못해 오른손만으로 칩니다. 이런 삶을 “having fun”(재미있는)이라고 했습니다. 긍정적으로 사는 것에 대해 “I won’t apologize for”(사과하지 않겠다)라고 합니다.


명언의 품격

불편한 다리 때문에 앉아있는 자세가 많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왼쪽). 윈스턴 처질 영국 총리(오른쪽)와 함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39세 때 소아마비에 걸렸습니다. 가족과 함께 휴가를 가서 요트를 타고 수영을 한 뒤 열이 나고 허리가 아팠습니다. 다음날 다리에 힘이 없어 일어설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의사들도 이유를 몰랐습니다. 보스턴에서 온 전문가로부터 소아마비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반신 마비도 루즈벨트의 정치 야망을 꺾지 못했습니다. 뉴욕 주지사에 이어 대통령에 도전해 성공했습니다. 대통령은 이동이 많은 직업입니다. ‘리더는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라는 그의 신조였습니다. 경호원들의 주요 임무는 대통령의 불편한 모습이 언론을 통해 노출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축을 받으며 이동하는 모습은 촬영이 금지됐습니다. 당시 유행어입니다.


Splendid Deception.”
(위대한 속임수)
영어에는 ‘멋진’이라는 뜻의 형용사가 많습니다. ‘splendid’(스플렌디드)는 최상급의 멋짐을 말합니다. ‘superb’(슈퍼브) ‘spectacular’(스펙태큘러)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splendid’는 ‘shine’(빛나는)과 비슷한 어원으로 ‘눈이 부실 정도의 장관’을 말합니다. ‘splendid’와 ‘deception’은 어울리지 않은 단어의 조합입니다.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은 멋진 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명언이 됐습니다. 불편한 모습을 감추려는 노력이 거의 예술의 경지에 달했다는 뜻입니다.


실전 보케 360

이민자 급증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캐시 호컬 뉴욕 주지사(오른쪽)와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왼쪽). 뉴욕 주정부 홈페이지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쉬운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최근 뉴욕이 중남미에불법이민자 때문에 난리입니다. 텍사스 등 남부 지역의 공화당 주지사들이 국경을 넘어온 이민자들을 버스에 한가득 실어 뉴욕으로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뉴욕 등 북부 지역이 이민자에게 관대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입니다. ‘너희도 한번 당해봐라’라는 심리가 깔려 있습니다. 최근 몇 개월 사이 6만여 명의 이민자가 몰려든 뉴욕은 포화상태가 됐습니다. 길거리를 점령한 이민자들 때문에 뉴욕 주민들은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뉴욕주와 뉴욕시는 이민자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주 정부는 이민자를 수용해 내부적으로 분산 배치하는 정책을 펴는 반면 시 당국은 더 이상 수용은 무리이기 때문에 다른 주로 이동시켜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최근 캐시 호컬 뉴욕 주지사가 브루클린 주변에 임시 수용시설 개소를 발표하자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We’ve been forced to play an unsustainable game of whack-a-mole.”
(우리는 지속할 수 없는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whack’은 ‘세게 때리다’ ‘후려치다’라는 뜻입니다. 때릴 때 ‘whack’(홱) 소리가 난다는 의성어입니다. ‘mole’(몰)은 다양한 뜻이 있는데, 공통적으로 ‘구멍’ ‘파인 곳’이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피부의 ‘점’을 말하기도 하고, 조직 내부에 뚫린 구멍, 즉 ‘배신자’를 뜻하기도 합니다. 땅 밑에 살면서 구멍을 통해 모습을 나타내는 동물 ‘두더지’를 뜻하기도 합니다. ‘whack-a-mole’은 ‘두더지를 때린다’라는 뜻입니다. 흔히 ‘뿅망치 게임’이라고 불리는 ‘두더지 잡기 게임’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두더지를 많이 때릴수록 점수가 오릅니다.

이 게임의 원리는 한 곳을 때리면 반사적으로 다른 곳에서 튀어 오른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는 곳을 급한 대로 눌러버리면 예상치도 못한 다른 곳에서 혼란이 생깁니다. ‘whack-a-mole’은 ‘피상적인 해결책’을 말합니다. 애덤스 시장은 호컬 주지사가 추진하는 임시 수용소 개설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한 말입니다. 연방 정부와 대통령이 개입해달라는 요청입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19년 11월 18일 소개된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투병에 관한 내용입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20년 넘게 암과 싸웠습니다. 치료를 위해 자리를 비울 때는 대법원 사이트에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긴즈버그 대법관이 생전에 인기가 높았던 것은 투철한 법 정신과 더불어 병과 맞서 싸우려는 노력 때문이었습니다.

▶2019년 11월 18일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91118/98411204/1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운동 트레이너 브라이언트 존스턴이 발간한 책 ‘RBG 운동법.’ 하베스트(Harvest) 출판사 홈페이지

‘RBG’라는 약자로 유명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 열풍이 한바탕 불고 지나갔습니다. 한국에서도 긴즈버그 대법관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개봉됐습니다. 꼬장꼬장한 할머니 인상이지만 실제로는 수다스럽고 농담도 잘하는 성격입니다. 인터넷에서는 그녀의 엉뚱한 일면을 그린 ‘밈’(일종의 동영상 짤)이 인기 폭발이었습니다. 얼마 전 암 치료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했던 긴즈버그 대법관이 최근 장염 때문에 또다시 입원했습니다. 이미 4차례나 암을 겪은 만큼 몸이 많이 쇠약해진 상태입니다. 긴즈버그 대법관의 유명 발언들을 모아봤습니다.


My hope is that it is as effective for the woman who works as a maid in a hotel as it is for Hollywood stars.”
(내 희망은 그것이 할리우드 스타들뿐 아니라 호텔의 여성 청소부에게도 효과적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여기서 ‘it’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말합니다. 대학 강연에서 미투 운동의 미래에 대한 질문에 받고 이렇게 답했습니다. 미투 운동은 할리우드 스타들에 의해 시작됐지만,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힘든 호텔 청소부 같은 여성들도 수혜자가 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When I started, I looked like a survivor of Auschwitz. Now I’m up to 20 push-ups.”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 나는 아우슈비츠 생존자 같았다. 지금은 팔굽혀펴기를 20개까지 할 수 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작고 허약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체력이 장난이 아닙니다. 1999년 처음 암 선고를 받고 운동을 시작해 20년간 쉰 적이 없습니다. 처음 운동을 시작할 무렵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처럼 허약했지만, 지금은 팔굽혀펴기(푸시업) 20개를 거뜬히 할 수 있는 실력입니다. ‘up to’는 숫자를 말할 때 ‘까지’라는 뜻입니다. 전담 운동 트레이너까지 덩달아 유명해졌습니다. ‘The RBG Workout: How She Stays Strong and You Can Too!’(RBG 운동법: 당신도 따라 할 수 있는 그녀의 건강 유지법)라는 책을 내서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In every good marriage, it helps sometimes to be a little deaf.”
(행복한 결혼생활은 때때로 귀가 먹는 것이 도움이 된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남편 마틴 긴즈버그 변호사와 56년 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냈습니다. 결혼할 때 시어머니가 귀띔해준 충고라고 합니다. 미국은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결혼생활에 대한 충고를 해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듣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된다’라는 것은 한국 속담 ‘시집살이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의 미국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결혼생활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들어서 도움이 안 되는 말은 가슴에 담아두지 않고 흘려보내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