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도 표정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19세기 영국 화가 윌리엄 홀먼 헌트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탁월했다. 그는 추상적인 양심의 모습을 시각화해 그린 ‘깨어나는 양심’(1853년·사진)으로 가장 유명하다.
그림은 빅토리아 시대 중산층 가정 실내에 있는 한 쌍의 남녀를 묘사하고 있다. 남자가 말실수라도 한 걸까? 여자는 남자 무릎에 앉았다가 벌떡 일어서고 있다. 언뜻 보면 다정한 부부가 잠깐 불화를 겪는 장면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림 속 다양한 상징들은 이들의 불륜 관계를 드러낸다. 파란 정장 차림의 남자와 달리 여자는 속옷에 준하는 하얀 실내복 차림이다. 여자는 왼손에 반지를 세 개나 꼈지만 약지에 결혼반지는 없다. 그러니까 남자는 지금 숨겨 놓은 정부의 집을 방문한 것이다. 남자가 마련해 주었을 여자의 집은 피아노와 고급 가구로 호화롭게 장식돼 있지만 정리 정돈이 안 돼 어수선하고 어지럽다. 피아노 끝에 걸려 있는 미완성된 태피스트리와 바닥에 뒹구는 실은 무책임함과 불성실함을 암시한다. 왼쪽 바닥에는 앨프리드 테니슨의 시 ‘눈물이, 부질없는 눈물이’가 적힌 종이가 버려져 있다. 가 버린 날들의 회한을 노래한 시다. 뒤에 있는 거울은 여자가 창밖 정원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
죽었던 양심은 무언가에 찔렸을 때 되살아난다. 여자의 양심을 깨운 건 찬란한 봄빛이다. 음침하고 어지러운 실내와 대비되는 밝은 빛을 보고 각성한 듯하다.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결심이라도 했을까. 남자의 품을 박차고 일어선다. 그런데 여자의 표정이 참 애매하다. 원래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려졌지만, 그림을 산 고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화가에게 수정을 요구해 지금처럼 애매한 표정이 되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