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이 3일(현지시각) 하원의장에서 해임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국 권력 서열 3위에 해당하는 하원의장이 미 헌정사상 처음으로 구성원들에 의해 해임됐다. 2023.10.04.[워싱턴=AP/뉴시스]
미국 하원이 3일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공화당 소속) 해임 결의안을 찬성 216표, 반대 210표로 가결했다. 이에 따라 매카시 의장은 재임 269일 만에 물러났고, 법안심사·처리 등 의회 기능이 정지됐다. 대통령·부통령에 이어 권력 서열 3위인 하원의장이 해임된 것은 미 의회 234년 역사상 처음이다. 표결에는 해임안을 제출한 맷 게이츠 의원 등 공화당 강경파 8명이 찬성표를 던졌고, 당론으로 찬성을 결정한 민주당 의원 전원이 가세했다.
이번 하원의장 해임은 공화당 내 강경파의 반란에 따른 야당 내분 사태에서 비롯됐지만 그 근저에는 비타협적 정치 양극화가 있다. 공화당 강경파는 매카시 의장이 연방정부 셧다운을 막기 위해 45일짜리 임시예산안을 처리하자 그에 반발해 해임을 주도했다. 일각에선 민주당 일부가 매카시 의장을 도울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를 추진한 매카시 의장과 날카롭게 대립해 온 민주당에서 당론 이탈 의원은 없었다. 여야의 가파른 대결 속에 야당 강경파가 여당 측과 손잡고 의장을 몰아내는 초유의 사태를 빚은 것이다.
의장 공석 사태는 장기화할 수 있다. 당장 새 의장을 선출해야 하지만 공화당 내분 수습부터 쉽지 않다. 매카시 의장도 올해 1월 자당 강경파가 잇따라 반대표를 던지면서 15번째 투표에서야 선출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의원 1명만 발의해도 의장 해임 표결을 가능케 하는 규정도 만들어졌다. 어떤 타협도 거부하는 소수 강경파가 의회를 마비시킬 수 있는 정치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던 초당적 협력은 이제 옛말이 됐다. 대화와 타협은커녕 절제와 관용도 찾아보기 힘들다. 거슬러 올라가면 전임 행정부 시절 최고조에 달했던 분열과 갈등의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내년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더 큰 소용돌이에 빠져들 수 있다. 국제사회의 리더 국가인 미국의 정치 실종은 전 세계에도 위기의 경보음을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