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몬트리올 ‘모멘타 비엔날레’에 설치된 지넷 엘러스의 작품 ‘모코는 미래다’(2022년). 아메리카대륙에 정착한 덴마크인을 보호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넜다고 전해지는 신 ‘모코’에서 영감을 얻은 영상 작품. 사진: 모멘타 비엔날레 제공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을 찍는 신디 셔먼의 각양각색 자화상부터, 루이스 부르주아가 복잡한 어린 시절에서 영감을 얻은 거대한 거미 엄마, 흑인 여성이 겪은 차별의 역사에 자신의 모습을 겹친 카라 워커의 설탕 조각까지.
많은 예술가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삶의 많은 문제를 이해하는 실마리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계 큐레이터인 한지윤 씨가 예술 감독을 맡은 제18회 모멘타 비엔날레를 지난달 25일부터 29일까지 다녀왔습니다. 현장 분위기를 소개합니다.
‘땅에 관한 인사’(Territorial Acknowledgment)로 불리는 이 선언문은 캐나다에서 과거 자행된 토착민에 대한 차별과 박해가 사회적 문제가 된 2015년경부터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이 문장 속에서 토착민, 프랑스인, 영국인 그리고 아시아인과 남·북·미 대륙 출신까지 실로 다양한 사람들에 모여 사는 캐나다의 상황을 그려볼 수가 있죠.
모멘타 비엔날레 개막식에서의 한지윤 큐레이터. 모멘타 비엔날레 제공
그중 일부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전시 공간 Vox에서 열린 레미 벨리보의 개인전 ‘역사의 피부 속에서. 조앙 뒬라지 되기.’(2023). 사진; Mike Patten, 모멘타 비엔날레 제공
- 레미 벨리보 ‘역사의 피부 속에서. 조앙 뒬라지 되기’(2023)
캐나다 몬트리올의 전시 공간 Vox에서 전시된 투안 앤드루 응우옌의 ‘조상의 유령이 되다’(2019). 사진: Mike Patten, 모멘타 비엔날레 제공
-투안 앤드루 응우옌 ‘조상의 유령이 되다’(2019)
20세기 초 베트남에 주둔했던 세네갈 병사와 베트남 여성들이 이룬 가정 내 사연을 다룬 작품. 이때 세네갈은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당했고, 세네갈의 젊은이들이 프랑스군에 징병 돼 베트남으로 가야 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혼혈 후손들은 차별과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작가는 세네갈 다카르에서 이들을 만나 취재한 이야기를 4채널 영상 픽션으로 재구성했다.
캐나다 몬트리올 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히토 슈타이얼의 설치 작품 ‘소셜 심’(2020년). 유니폼을 입은 경찰들이 전 세계에서 수집된 공권력 폭력 정보와 연계해 춤을 추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모멘타 비엔날레 제공
대부분 작품들은 잊힌 존재,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공동체의 입장이 되어서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형태의 것이었습니다.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선보였던 작품,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을 때 작품은 물론 신작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몬트리올 레너드 & 비나 앨런 갤러리에서 열린 정은영 작가의 개인전 ‘여성 국극 프로젝트: 젠더를 빼앗아라!’(2023). 사진: Mike Patten, 모멘타 비엔날레 제공.
이 사진을 본 다음 통로를 따라 가면 내부 전시 공간에 여성 국극에 관한 기록물을 되살린 ‘지연된 아카이브’(2018~2023)가 등장합니다. 전시장 벽면에는 여성 국극 기록물 속 이미지들을 거친 질감과 색채로 표현한 작품도 함께 전시됐습니다.
몬트리올 레너드 & 비나 앨런 갤러리에서 열린 정은영 작가의 개인전 ‘여성 국극 프로젝트: 젠더를 빼앗아라!’(2023). 사진: Mike Patten, 모멘타 비엔날레 제공.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새로 공개한 신작은 사뭇 다른 분위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전 작업들이 거칠고 강렬함을 담고 있었다면, 신작 ‘먼지’는 부드럽고 감성적인 시각 언어가 등장했습니다. 여성 국극 배우와 정 작가가 오래된 사진과 기록을 보며 대화하는 장면인데, 추억을 더듬는 듯 아련한 화면이 이어졌습니다.
몬트리올 레너드 & 비나 앨런 갤러리에서 열린 정은영 작가의 개인전 ‘여성 국극 프로젝트: 젠더를 빼앗아라!’(2023)에서 공개된 신작 ‘먼지’. 사진: Mike Patten, 모멘타 비엔날레 제공.
한국인으로 태어나 프랑스와 캐나다를 오가며 다양한 문화적·지리적 맥락 속에서 자란 그녀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오늘은 한국을 벗어나 세상 속 다양한 정체성들을 상상해보는 것 어떨까요?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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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