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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어린이과학동아 별별과학백과]베토벤은 어디가 아팠을까? 머리카락 속 DNA로 알아냈어요

입력 | 2023-10-06 03:00:00

여덟 묶음의 후보 머리카락 중에서
DNA 일치하는 진짜 모발 가려내
염기서열 비교해 유전자 변이 발견
B형 간염 등 간 질환으로 사망한 듯



루트비히 판 베토벤


따다다단∼! 따다다단∼! 첫 소절만으로도 강력한 느낌을 주는 ‘운명 교향곡’을 만든 사람은 바로 독일 음악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에요. 그는 생전 온갖 질병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도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켰지요. 최근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이 200여 년 만에 베토벤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냈다고 해요.



● 베토벤의 ‘진짜’ 머리카락을 찾아라

“싹둑싹둑 . 베토벤, 당신의 머리카락이라도 잘라 보관하겠어요.” 1827년 베토벤이 세상을 떠날 때 사람들은 그의 머리카락을 한 묶음씩 잘라냈어요. 베토벤을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서였지요. 하지만 20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머리카락이 뒤바뀌는 일은 없었을까요? 연구팀은 머리카락이 진짜인지부터 가려내야 했어요.

베토벤이 죽은 다음 날인 1827년 3월 27일 그의 책상에서 유서가 발견됐어요. 자신이 겪은 질병의 원인을 알아내 세상에 공개해 달라는 부탁이 담겨 있었죠. 베토벤은 20대부터 높은 음을 듣지 못하고, 이명과 심한 복통에 시달리는 등 평생 질병으로 고통받았거든요.

베토벤이 사망하기 이틀 전부터 그의 집을 방문한 친척과 지인들은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한 묶음씩 잘라냈어요. 당시 유럽에는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라 간직하는 관습이 있었거든요.

올해 3월 독일 튀빙겐대 고고학과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은 베토벤의 머리카락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어요. 연구팀이 확보한 머리카락은 총 여덟 묶음이었어요. 머리카락을 보관하고 있던 사람들과 박물관, 대학교로부터 머리카락을 기증받았죠. 하지만 여덟 묶음 모두 진짜 베토벤의 머리카락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머리카락의 유전물질을 분석했어요. 분석 결과, 다섯 묶음은 DNA가 일치했고, 남성에게 있는 XY 염색체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연구팀은 다섯 묶음 모두 베토벤의 진짜 머리카락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세 묶음의 머리카락 중 하나는 DNA가 심하게 손상되어 식별할 수 없었고, 둘은 베토벤이 아닌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이었어요. 특히 베토벤이 죽기 전 베토벤의 집을 방문했던 지인인 페르디난트 힐러가 잘라낸 것으로 알려진 머리카락은 유대인 여성의 것으로 밝혀졌어요.

1994년 미국 아르곤연구소 연구팀은 이 머리카락에서 정상 범위보다 100배나 많은 양의 납을 검출해 ‘베토벤이 납 중독으로 숨졌다’고 분석한 바 있어요. 엉뚱한 머리카락을 분석한 탓에 지금까지는 베토벤이 납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주장이 유력했습니다.

이번 연구팀은 기존의 사인을 뒤집었어요. 미국 새너제이주립대 베토벤센터 윌리엄 메러디스 연구원은 “페르디난트 힐러는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보관하고 있다가 아들인 폴에게 생일 선물로 주었고, 이후 누군가가 힐러의 며느리였던 동유럽 출신 유대인 조피 리온의 머리카락을 대신 넣어놨을 것”이라고 추정했어요.



● 간 질환과 B형 간염이 베토벤의 사인
연구팀은 베토벤의 진짜 머리카락으로 사인을 밝혀냈어요. 사람의 머리카락에는 ‘생명의 설계도’인 DNA가 담겨 있어요. DNA에는 세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유전자들이 들어 있죠. 사람의 DNA는 30억 쌍의 염기로 이뤄져 있는데, 염기 배열 순서에 따라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종류가 달라지고 다른 신체적 특징을 가져요. 예를 들면 전체 유전자의 0.1% 차이로 누구는 우유를 먹으면 배가 아프고,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쌍꺼풀이 있으며, 누구는 특정 질병이 더 잘 생기죠. 그래서 DNA를 분석하면 과거에 앓았던 병도 알아낼 수 있어요.

그런데 죽은 사람의 뼈나 치아, 머리카락으로 DNA를 분석하는 일은 산 사람의 DNA를 분석하는 것보다 까다로워요. DNA는 시간이 지날수록 짧은 파편으로 분해되기 때문이지요. 베토벤은 생전 진행성 난청과 위장 장애, 간 질환 등을 앓았어요. 연구팀은 베토벤의 머리카락 샘플 5개 중 가장 보존이 잘된 머리카락에서 DNA를 추출했어요. 그런 다음, 베토벤의 DNA 염기서열과 비슷한 질병을 가진 환자들의 염기서열, 질병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염기서열을 비교해 유전자 변이를 확인했어요.

분석 결과 연구팀은 베토벤의 DNA에서 간 질환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 변이를 발견했어요. 기록에 따르면 베토벤은 사망 전 눈, 피부 등이 노래지는 황달이 생기고 팔다리가 부풀어 올랐어요. 간이 손상됐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죠. 이 외에도 연구팀은 베토벤의 머리카락 샘플에서 B형 간염 바이러스의 DNA 조각을 발견했어요.

영국 케임브리지대 고고학과 트리스탄 베그 박사는 “베토벤이 매일 점심 최소 1L의 와인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며 “유전적으로 간 질환에 걸리기 쉽고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데다가 알코올을 너무 많이 섭취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배하진 어린이과학동아 기자 hae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