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묶음의 후보 머리카락 중에서 DNA 일치하는 진짜 모발 가려내 염기서열 비교해 유전자 변이 발견 B형 간염 등 간 질환으로 사망한 듯
루트비히 판 베토벤
따다다단∼! 따다다단∼! 첫 소절만으로도 강력한 느낌을 주는 ‘운명 교향곡’을 만든 사람은 바로 독일 음악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에요. 그는 생전 온갖 질병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도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켰지요. 최근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이 200여 년 만에 베토벤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냈다고 해요.
● 베토벤의 ‘진짜’ 머리카락을 찾아라
베토벤이 사망하기 이틀 전부터 그의 집을 방문한 친척과 지인들은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한 묶음씩 잘라냈어요. 당시 유럽에는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라 간직하는 관습이 있었거든요.
올해 3월 독일 튀빙겐대 고고학과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은 베토벤의 머리카락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어요. 연구팀이 확보한 머리카락은 총 여덟 묶음이었어요. 머리카락을 보관하고 있던 사람들과 박물관, 대학교로부터 머리카락을 기증받았죠. 하지만 여덟 묶음 모두 진짜 베토벤의 머리카락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머리카락의 유전물질을 분석했어요. 분석 결과, 다섯 묶음은 DNA가 일치했고, 남성에게 있는 XY 염색체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연구팀은 다섯 묶음 모두 베토벤의 진짜 머리카락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세 묶음의 머리카락 중 하나는 DNA가 심하게 손상되어 식별할 수 없었고, 둘은 베토벤이 아닌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이었어요. 특히 베토벤이 죽기 전 베토벤의 집을 방문했던 지인인 페르디난트 힐러가 잘라낸 것으로 알려진 머리카락은 유대인 여성의 것으로 밝혀졌어요.
1994년 미국 아르곤연구소 연구팀은 이 머리카락에서 정상 범위보다 100배나 많은 양의 납을 검출해 ‘베토벤이 납 중독으로 숨졌다’고 분석한 바 있어요. 엉뚱한 머리카락을 분석한 탓에 지금까지는 베토벤이 납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주장이 유력했습니다.
● 간 질환과 B형 간염이 베토벤의 사인
연구팀은 베토벤의 진짜 머리카락으로 사인을 밝혀냈어요. 사람의 머리카락에는 ‘생명의 설계도’인 DNA가 담겨 있어요. DNA에는 세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유전자들이 들어 있죠. 사람의 DNA는 30억 쌍의 염기로 이뤄져 있는데, 염기 배열 순서에 따라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종류가 달라지고 다른 신체적 특징을 가져요. 예를 들면 전체 유전자의 0.1% 차이로 누구는 우유를 먹으면 배가 아프고,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쌍꺼풀이 있으며, 누구는 특정 질병이 더 잘 생기죠. 그래서 DNA를 분석하면 과거에 앓았던 병도 알아낼 수 있어요. 그런데 죽은 사람의 뼈나 치아, 머리카락으로 DNA를 분석하는 일은 산 사람의 DNA를 분석하는 것보다 까다로워요. DNA는 시간이 지날수록 짧은 파편으로 분해되기 때문이지요. 베토벤은 생전 진행성 난청과 위장 장애, 간 질환 등을 앓았어요. 연구팀은 베토벤의 머리카락 샘플 5개 중 가장 보존이 잘된 머리카락에서 DNA를 추출했어요. 그런 다음, 베토벤의 DNA 염기서열과 비슷한 질병을 가진 환자들의 염기서열, 질병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염기서열을 비교해 유전자 변이를 확인했어요.
분석 결과 연구팀은 베토벤의 DNA에서 간 질환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 변이를 발견했어요. 기록에 따르면 베토벤은 사망 전 눈, 피부 등이 노래지는 황달이 생기고 팔다리가 부풀어 올랐어요. 간이 손상됐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죠. 이 외에도 연구팀은 베토벤의 머리카락 샘플에서 B형 간염 바이러스의 DNA 조각을 발견했어요.
배하진 어린이과학동아 기자 hae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