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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지진에 성난 북아프리카… 또 다른 권위주의 체제 부르나[글로벌 이슈 읽기/백승훈]

입력 | 2023-10-05 23:18:00

리비아-모로코 재해 복구도 난항




지난달 12일 홍수에 다리가 무너지는 등 큰 피해를 입은 리비아 동부 항구도시 데르나시의 모습. AP 뉴시스

백승훈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전임연구위원

《2023년 9월 10일 태풍 ‘다니엘’이 리비아 동부 항구 도시 데르나를 강타했다. 다니엘은 올해 이상고온으로 인해 그 몸집을 키운 메디케인(medicanes·지중해에서 발생하는 태풍)이었지만, 리비아의 피해 상황은 단지 ‘기후변화로 인한 대형 태풍’만을 원인으로 짚기엔 부족했다. 그리스, 튀르키예, 이집트, 이스라엘, 불가리아도 태풍 영향을 받았지만 유독 리비아에서만 많은 사망자와 19억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6개국 총 피해액(21억 달러)의 90%다. 국제기구들에 따르면 사망자는 1만8000명에서 2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피해가 리비아에서 유독 컸던 원인은 데르나 계곡 상류의 낙후된 2개 댐, 만수르와 데르나 댐이 붕괴하면서 3000만 ㎥의 물이 한꺼번에 데르나시로 방류됐기 때문이다.》








리비아, 낙후된 댐 방치 재해 불러

사실 이들 댐에서는 이미 1998년 균열이 발견됐고 이 때문에 2007년 당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은 튀르키예의 건설회사 아르셀(Arsel)에 유지 보수 공사를 맡겼다. 하지만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카다피가 축출되고 리비아 내전이 시작되면서 보수 작업은 온전히 마무리될 수 없었다.

홍수 피해를 입은 리비아 데르나시를 점령하고 있는 리비아국가군사회의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 동아일보DB

42년간 장기 독재를 이어오던 카다피가 2011년 중동을 휩쓴 반정부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으로 축출된 이후 리비아는 내전에 시달리고 있다. 유엔의 공식 인정을 받은 트리폴리 리비아 통합정부(GNA)와 벵가지를 거점으로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이 지휘하는 리비아국가군사회(LNA) 혹은 투브루크 정부가 나뉘어 지금까지 투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데르나시가 2012년과 2013년에도 댐 유지 보수 사업으로 200만 달러 이상을 집행하기로 했지만, 제대로 집행되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2021년 정부 감사에서 해당 재원은 집행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데르나시는 하프타르 장군이 점령한 리비아 동편에 있기 때문에 트리폴리 중앙정부가 제대로 된 감사를 실시하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리비아에 앞서 또 다른 비극이 있었다. 9월 8일 오후 11시경 유명 관광도시 마라케시 인근에서 규모 6.8의 강진이 일어난 것. 지금까지 2900여 명의 사망자와 553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5만9000여 가구가 붕괴한 것으로 집계됐다. 모로코의 피해 역시 자연재해만으로 보기에 마뜩잖은 부분이 많다.





모로코, 재해 기자회견 단 한 차례

모로코는 리비아와 달리 단일한 정치 체제가 오랫동안 존속했다. 입헌군주제다. 그러나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영국의 입헌군주제와는 달리 왕의 권한은 막강하다. 2011년 아랍의 봄 이전까지 국왕은 의회 해산권, 비상계엄 선포권, 사법부 재판관 임명권 등 거의 모든 실권을 행사했다. 현재도 대부분의 권한은 왕정에 귀속돼 있다.

모로코 강진 나흘 뒤 국왕 무함마드 6세가 헌혈하고 있다. AP 뉴시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왕의 권력 집중화는 국가재난 상황에서 모로코 정부의 재난 대응 효율성을 저해했다. 2004년 발생한 알호세이마 지진 때 ‘그 어떤 정부 관료도 왕 이전에 공식적인 행보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 때문에 총리는 지진 발생 4일 만에야 피해 지역을 방문하였다. 이번 마라케시사피 지진에서는 국가재난 컨트롤타워인 모로코 국왕 무함마드 6세가 지진 발생 사흘 만에 피해자들을 위로 방문했다. 지진 발생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외유 중이었기 때문이다.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외신의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대변인은 단 한 차례 공식 기자회견을 진행했을 뿐이다. 친정부 성향의 모로코 무함마드 5세 대학의 압둘라힘 교수조차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 유관 부처인 내무부, 장비수자원부, 보건사회보호부 등의 장관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국민과 소통하며 현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며 정부의 개입을 요구하였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모로코 왕정의 ‘불통’은 하루 이틀 된 이야기가 아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무함마드 6세는 2022년 한 해 약 200일을 자국이 아닌 곳에서 외유하였다. 1999년 왕좌에 오른 뒤 가진 인터뷰는 총 6차례에 불과하다. 그나마 자국 언론이 아닌 외신과 진행했고 2016년에 마다가스카르 공화국의 말라가시 프레스와 한 인터뷰가 마지막이다.

지진은 이런 국왕의 일방적인 행보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에 불을 지피고 있다. 모로코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왕정에 대한 비판과 불만의 목소리가 불거지고 있고 경제위기, 특히 실물 경제와 석유 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스위스 로잔대의 모니아 교수는 “‘국왕은 좋지만 정치 엘리트 계급은 부패했다’는 국민들의 인식이 ‘국왕이 정부의 현 실정을 주도하고 있다’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위주의 체제의 악순환 우려돼

이 북아프리카 지역의 두 나라가 겪은 자연재해와 이후 수습 상황은 구체적으로 보면 상이하지만, 중동지역 정치 체제의 취약점을 공통적으로 드러낸다. 2010년, 장기 집권 권위주의 체제에 대항하여 전 중동 아랍 지역에서 아랍의 봄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브루킹스연구소의 타리크 유세프는 아랍의 봄 이후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 주장한다. 리비아에서는 독재자 카다피의 사망과 그의 독재 정권의 몰락이 결국 또 다른 공포와 폭력 그리고 무질서로 이어졌고, 모로코에서는 절대군주제에 가까운 왕정이 권리를 일부 내려놨지만, 여전히 민주적인 정책과 비판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영국 런던 소재 채텀하우스연구소 리나 카팁은 이렇듯 아랍의 봄 다수의 중동 아랍 국가들이 제대로 된 민주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 국가(failing state)로 귀결됐음을 지적한다. 30년 군부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퇴진에 성공했던 이집트의 아랍의 봄도 국민 투표에 의해 선택받은 무슬림 형제단의 퇴출, 노조 금지 그리고 보다 공공화된 엘시시 군부 정권의 귀환으로 마무리되었다.

2023년 9월 리비아와 모로코에서 발생한 태풍과 지진은 각국의 국민들로 하여금 아랍의 봄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가 그들의 나라를 전혀 발전시키지 못했고, 되레 자연재해의 피해를 더 키워 인재(人災)를 만들었음을 깨닫게 했다. 불확실성 그리고 자신들의 생명과 안위가 위협받는 상태의 민중은 그 상황을 신속히 안정화시켜 줄 강력한 리더십의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를 소구하게 된다. 사실 권위주의 체제가 이런 모든 문제의 원인임에도 현재의 혼란을 잠재울 강력한 권위주의를 또 바라게 되는 것이다. 이 악의 순환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또 언제 어디서 이런 재난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





백승훈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전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