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제재 아래 놓인 북-러의 협력 강화 행보 푸틴 방북, 군사기술 전수 여부엔 변수도 많아 11월 미중 정상회담 가능, 우리 대응력 키울 때
박노벽 전 주러시아·주우크라이나 대사
지난달 중순 러시아가 북한과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극동군사시설들을 방문해 국내외에 많은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북-러 정상회담 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이 작성된 것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외부에는 미지의 상태에 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모든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했고 정상회담에 여러 분야 고위 인사들이 배석한 점에 비추어 탄약 문제 외에 반서방 연대를 강화하려는 외교, 군사 협력과 양자 경제, 관광 협력 등 여러 문제를 다룬 것으로 보인다.
특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서방 주도 대러 제재에 동참한 한국과 대조적으로, 북한이 러시아에 열렬히 지지를 보낸 데 대해 인정을 해 주면서 향후 협력 확대의 실리와 명분을 쌓아가려 하고 있다. 러시아는 반서방 기치 아래 동북아에서 미국 주도로 형성된 한미일 간 연대에 반대하기 위해 북한을 활용해 보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러시아가 앞으로 얼마나 실행에 옮길지는 주목해 보아야 하겠지만, 구두 협의 등에 비추어 상황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여지는 있어 보인다.
북한은 2017년까지 핵실험을 6차례 집중 실시해, 핵무기 개발을 완성한 후 국내 경제 발전에 매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2006년 핵실험 이래 17년간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에 막혀 북한은 고립과 단절 속에 식량위기 등을 겪어 왔다.
북한은 올 8월 핵무기 고도화를 위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초음속 비행체, 핵잠수함 등 전략무기 개발 목표를 발표했다. 그러나 북한은 고립 심화로 고도 과학기술 기반 무기를 개발하고 확보할 경제력,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은 외교적 고립 탈피와 함께 상대적으로 수준 높은 군사력을 가진 러시아와의 협력에 최우선 순위를 두며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그동안 핵미사일 실험에 따라 촘촘히 부과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로 인해 대외협력상 제약이 크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9월 13일 러 언론 타스 인터뷰에서 안보리 결의 이행 문제를 재해석하는 궁색한 논리를 내놓았다. 그는 안보리 제재 결의를 채택했을 당시와는 달리, 현재는 서방과 대결 상황이 되었고, 대화를 통한 인도적 문제 해결의 약속을 서방이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러시아는 안보리 결의를 지킬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9월 18일 모스크바를 방문, 라브로프 장관과의 회담 때와 이틀 뒤 푸틴 대통령 예방 때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특별한 책임과 국제적 의무’를 강조했다. 이는 미중 간 사전 회담을 가진 후 나온 것으로서 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러시아가 배려하라는 의미도 담아 발언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중요한 국제외교 일정들이 있다. 이달 중순 베이징에서 일대일로 국제포럼을 계기로 러-중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중국은 대외관계 문제에 대해 이중적 입장을 갖고 있어서, 미중 전략 경쟁 문제를 감안해 러시아의 협조를 중시한다는 입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중-러가 북한 문제에 관해 역할 분담 존중으로 봉합할지, 반미 반서방 기치 아래 3국 연대를 강조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더 큰 틀에서 볼 때, 미중은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계기로 정상회담을 준비 중이다. 이 회담 결과는 우크라이나 문제를 포함해 세계 안보와 경제 문제, 동아시아 질서에 대해 상당한 영향과 시사점을 줄 것으로 보인다. 우리로서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견고히 하기 위해 미중과 소통하여 한반도 안정을 위한 협력 방안을 전달하는 것은 기본이다. 더 나아가 동북아 내에 신냉전 구도가 고착되지 않도록 다각도의 외교적 방안도 강구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러시아가 북한 관계를 어느 단계까지 확대할지는 우리의 외교적 대응 방안에도 달려 있다.
박노벽 전 주러시아·주우크라이나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