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이후 전쟁-박해 피해 온 이민 급증 통합 노력 대신 ‘反이민’ 여론 선동은 부적절
조은아 파리 특파원
영국 내무장관이 이주민을 ‘허리케인’이라고 불렀다. ‘반(反)이민’ 여론에 편승하는 극우 정치인이 아니라 국가 살림을 이끄는 장관의 발언이어서 영국은 물론이고 유럽에 주는 충격이 작지 않다. 내무장관 수엘라 브래버먼은 1960년대 아프리카 모리셔스와 케냐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부모를 뒀다. 자신도 영국 정부 이민 정책의 혜택을 받아 장관까지 올랐지만 더 강경한 이민 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영국으로 건너오는 이들이 과연 사회를 풍비박산 낼 허리케인인 걸까. 영국은 브렉시트(유럽연합·EU 탈퇴) 이후 EU 회원국 이주민이 줄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이민이 급증하긴 했다. 지난해 영국으로의 순이주 인원은 60만6000명으로 전년에 비해 24% 증가했다. 반이민 여론이 고조된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전 순이주 인원의 약 2배에 달한다.
이민이 늘어난 데는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난민이 12만 명 넘게 영국으로 이주한 영향이 컸다. 여기에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아프가니스탄과 중국 정부의 시민권 탄압이 커진 홍콩에서 영국으로 도피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영국 정부는 박해나 탄압을 피해 이주한 이를 받아들이는 인도주의적 비자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영국 정부가 긴장할 정도로 이민 문제 해결은 시급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민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적극 환기시키고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해도 내무장관이 반이민 감정을 부채질하듯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는 선동성 발언을 하는 건 부적절하다. 이민에 대한 부정적 여론만 키울 뿐 이주민의 사회 통합은 더 어려워진다.
영국 이웃 나라에서도 이주민과 관련된 부정적인 사례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주민을 통합시키려는 정부와 사회의 노력이 부족한 결과가 아닐까. 프랑스 낭테르에서는 올 6월 17세 이주민 청년 나엘이 경찰 총에 맞아 숨진 이후 한동안 이주민 차별에 반대하는 폭력 시위 사태가 빚어졌다.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돼 일부 지역 학교와 관공서 건물 등이 파괴되거나 훼손되는 등 피해를 낳았다. 이제 시위 소식은 뉴스 헤드라인에서 사라졌지만 파리 도심 곳곳에는 나엘의 죽음을 기리는 문구와 벽화가 남아 있다.
‘복지 천국’ 스웨덴도 쿠르드족 이민자 출신인 라와 마지드가 이끄는 갱단 폭력 사태로 충격에 휩싸였다. 지난달에만 이 갱단 폭력으로 12명이 숨지자 당국은 군대를 동원해 치안을 유지하는 초강수를 뒀다. 폭력 사태 원인이 이민자이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갱단이 이민자 출신으로 구성된 사실이 알려지자 이민 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구가 감소해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피한 한국에 유럽의 반이민 바람은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국내 정치권에서도 불법 이민 문제를 부각하고 반이민을 선동하려는 조짐이 보인다. 이민 문제는 경제가 어려워질 때 불만을 표출하는 타깃이 되곤 한다. 정치인 발언이 반이민 여론을 일으켜 불필요한 사회 혼란과 불안을 키우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감정적인 대응 전에 장기적인 이민 정책을 설계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유럽의 시행착오를 피할 수 있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