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 대학 6곳 4년간 1024명 떠나… 의대 열풍 가속에 이탈 늘어나 학비 지원-병역 특례도 효과없어… “이공계 처우 개선 없인 인력난 가중”
“점점 많은 학생이 이공계는 연봉이나 직업 안정성에서 ‘메리트’가 없다고 느껴요. 그 대신 노후와 연봉이 보장되는 의대에 가려고 반수나 재수를 합니다.”
한 과학기술원 A 교수는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최근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학교를 관두는 학생이 늘고 있는 것을 체감한다고 했다. 국가가 과학기술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만든 연구중심 국립대인 과학기술원조차 의대 열풍에 흔들리며 학생들이 이탈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기술 분야 인력 수요는 팽창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고급 인재 양성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 KAIST 떠나 의대로 가는 학생들
교육계에서는 이들이 대부분 의대나 약대 등으로 이동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이공계 학생이 의대 진학을 위해 이탈하는 흐름은 원래도 있었지만 최근 의대와 약대 모두 신입생 선발로 학생모집 방식이 바뀐 데다 의대 열풍이 더해져 이탈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이 폐지되면서 전국 37개 약대는 올해부터 신입생만 선발한다. 기존에는 일반학과 2학년생이 PEET를 치러 약대 3학년으로 편입해야 했다.
앞으로는 재수나 반수를 통해 약대 도전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의대(전국 39개)와 약대를 노리는 이공계 학생의 이탈률이 더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임 대표는 “최근 만난 한 이공계 특화대 교수도 학교 자체적으로 파악한 결과 이탈생 90%는 의대를 가려고 빠져나간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 이공계 처우 개선 없인 인력난 못 막아
이공계 특성화대 6곳 대부분은 모든 재학생에게 학비와 병역 특례 혜택을 지원한다. 이러한 혜택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졸업 후 취업, 연구 등의 진로를 고려했을 때 의대 재도전이 더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공계 분야 인력 부족은 심각하다. 고용노동부는 앞으로 5년간 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나노 등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핵심 신기술 분야 인력이 6만 명 부족하다고 관측했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 조사에서도 2030년까지 반도체, 배터리, 미래차, 디스플레이 등 핵심 산업 인력 7만7000명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전망이 나왔다.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