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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손효림]한국문학, 세계로 나아가려면 번역 지원 절실

입력 | 2023-10-06 23:48:00

한국문학 번역지원금, 10여 년 새 반 토막
재정지원 확대해 국경 넘는 날개 달아줘야



손효림 문화부장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가 선정됐다. 교보문고, 알라딘은 5일 저녁 수상자가 발표되자마자 홈페이지 첫 화면에 이를 알리며 그의 작품 소개에 나섰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이즈음은 일 년 중 문학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아지는 때다.

한국문학도 약진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부커상에서 돋보이는 성과를 냈다. 2016년 한강 작가가 소설 ‘채식주의자’로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와 함께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지난해 정보라 작가와 안톤 허(허정범) 번역가가 ‘저주 토끼’로, 올해는 천명관 작가와 김지영 번역가가 ‘고래’로 이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저주 토끼’는 미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전미도서상 번역 부문 최종 후보로도 선정돼 다음 달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척박한 한국문학 번역 생태계에서 이런 꽃들을 피워낸 건 매우 놀랍다. 한국문학은 해외에 소개되는 작품이 늘었지만,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규모는 미미하다. 번역으로 생계를 유지하긴 어려워 한국문학 번역가 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안톤 허는 지난달 낸 에세이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에서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토로했다. 뛰어난 통역가인 그는 한국문학을 너무나 사랑해 전업 번역가가 됐다. 한데 그가 문학번역 수업을 받고 첫 단행본 번역서를 내기까지 무려 9년이 걸렸다. 그가 번역해 해외 출판한 책 중 에이전시를 통한 건 절반이고 나머지는 직접 뛰었다. 그는 작가, 출판사를 설득하고 영어로 5000단어에 이르는 샘플 번역과 제안서를 해외 출판사에 보낸 후 역시 설득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과정을 견뎠다. 지난해 ‘저주 토끼’와 함께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에 오른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도 그가 번역했는데 두 책 모두 손수 발굴했다.

그는 “계약을 따내는 작업이 일의 8할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정작 번역하는 데 드는 시간은 얼마 안 되는 게 현실이라는 것. 번역가 지망자들은 여기저기 호소해야 하는 이 지난한 과정에서 대부분 나가떨어진다. 안톤 허는 4일 서면 인터뷰에서 “번역 계약이 됐거나 계약이 임박한 작품이 10권 정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계약한 작업이 끝난 후에도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번역비가 낮은 게 가장 큰 문제다. 안톤 허는 “비슷한 분량의 단행본에 대해 올해 받은 번역 지원금을 2010년과 비교해보니,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면 딱 절반이었다. 10여 년이 지났는데 번역 수입은 반 토막 난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문학 번역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문학을 사랑하지 않는 한 이 일에 뛰어들지 말라. 그래도 하고 싶다면 도착어 문장력을 키우고 열심히 네트워킹하라”고 당부했다.

번역은 단순히 해외에서 책을 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성석제 소설가는 말했다. “소년 시절 읽은 세계문학전집은 영혼의 자양분이었습니다. 낯선 세계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위로 받으며 각성했죠. 국경을 넘어 단 한 명의 소년이라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한다면 소설을 쓴 보람이 있습니다.”

안톤 허는 “금전적 지원이 다른 모든 조건을 견인하기에 한국문학 번역을 위해선 금전적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문학에는 영혼의 떨림을 선사하는 작품이 적지 않다. 이 작품들이 더 많은 나라에 가닿으려면 번역이란 날개를 달아줘야 한다. 견고하고 튼튼한 날개를.



손효림 문화부장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