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고수들의 신박한 인생 기록 비법-3회 <스콧·헬렌 니어링 부부>
최근 자신의 인생을 자서전으로 남기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좋은 글을 쓰려면 우선 글감이 되는 인생의 자료를 잘 모아두어야 합니다. 글쓰기 고수들의 신박한 인생 기록 비법을 내·손·자(내 손으로 자서전 쓰기) 클럽이 소개합니다.
‘조화로운 삶’의 저자인 스콧과 헬렌 니어링 부부. 출판사 보리 제공. 동아일보 자료사진.
미국의 스콧 니어링(1883∼1983)과 헬렌 니어링(1904∼1995) 부부는 함께 쓴 책 ‘조화로운 삶(1954)’을 통해 번잡한 도시 생활을 떠나 한적한 시골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전세계인에게 설파했다.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3년 뉴욕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버몬트 주 외딴 오두막집에서 시골살이를 시작한 부부는 6·25전쟁이 벌어지던 1952년 역시 사람이 드문 메인주 바닷가로 삶의 터전을 옮겼고 거기서 각자의 생을 마감했다.
부부가 말한 조화로운 삶이란 대략 이렇다. 하루의 3분의 1은 스스로 먹을 채소를 가꾸며 땔감을 장만하고, 3분의 1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3분의 1은 친구들과 교류하는 것이다. 그들보다 한 세기 먼저 메사추세츠 주 월든 호숫가 오두막집에 은거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의 뒤를 이은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은 2차 대전 이후 반전운동에 열광한 미국 젊은이들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동아일보가 선정한 2000년 올해의 책 ‘조화로운 삶’. 동아일보 자료사진.
경제학자로서 사회개혁가이고 자유주의자였던 스콧은 아동 노동문제를 제기하고 여성의 사회참여를 지지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에 흥분했으나 이어진 전쟁의 광기에 비판적인 된 그는 미국의 1차 세계대전 참전을 반대하는 반전운동에 앞장서다 스파이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다. 배심원단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이 일로 그는 대학에서 쫓겨나고 아내와 아들과도 헤어져 살게 된다.
그런 까닭에 ‘스콧 니어링 자서전’은 진보주의적 관점에서의 시대 고발이자 자기 항변으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필자를 포함해 그와 다른 이념과 신념을 가진 독자들은 마음 편하게 읽기 쉽지 않다. 하지만 스콧은 서문에서 ‘자서전 쓰기’에 관한 중요한 한 문단을 남겼다. 한 인생의 기록은 그 시대의 기록이어야 한다는, 좌우 이념과 동서 고금의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일반론을 설파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서전은 살아오면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자신을 중심으로 그려내는 보고서 같은 것이다. 그러나 자기 이야기에만 국한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서전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에서, 그리고 전체의 일부로서 느끼고, 사고하고, 행동한다. 나는 이 세가지 차원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쓸 이야기는 이 셋을 동시에 포괄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의 자서전은 한 개인의 기록이라기보다는 그 개인이 살아온 시대의 기록이 되어야 한다(스콧 니어링 자서전, 실천문학사, 2000년, 39-40쪽).”
스콧 니어링 자서전
모든 개인은 특정한 한 시대를 살아간다. 예를 들어 만 60세를 기준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거나 앞두고 있는 한국의 ‘베이비 부머’ 세대는 ‘산업화 시대’, 이어진 ‘민주화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다. ‘한강의 기적’이 상징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을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만드는데 초석을 닦은 ‘산업화 세대’, ‘넥타이 부대’가 상징하는 것처럼 20세기 신생국가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구축한 ‘민주화 세대’도 대한민국의 역사를 움직였던 그 시대의 기록을 각자의 자서전으로 남겨 후대에 전해주면 어떨까.
“여기는 겨우 일주일만 있었고(숙박료는 7달러), 먹는 것은 날마다 잘 먹었소. 아침은 오렌지와 대추야자 몇 개, 점심은 양상추 1인분 또는 1인분 반, 사워크림과 꿀 약간, 저녁은 강연 뒤의 토마토주스. 이 밖에 하루 중 때때로 당근, 자몽, 사과 같은 과일로 만든 주스를 보통 작은 컵으로 얼마간 들었다오(‘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보리, 2022년 고침판. 143쪽).”
헬렌 니어링 자서전.
1940년대 스콧이 미국 디트로이트에 강연을 하러가 보내온 편지를 인용하면서 헬렌은 “이 모두가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라’는 그 사람의 철학에 따른 것”이라고 썼다. 스콧은 이념이 다른 맏아들 존과 잘 지내지 않았다. 미국의 자본주의와 세계대전 참전에 비판적이었던 스콧과 달리 존은 그것의 홍보에 앞장섰다. 아직 부자지간이 파탄나기 전인 1949년 12월 스콧은 존에게 편지로 이렇게 타일렀다.
“어느 날 너는 깨어 일어나 네가 무엇을 해왔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네가 그것을 깨달아 남은 네 인생을 무언가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돌리고, 천박하고 거짓되고 파괴적인 사회 환경에서 어린 것들(두 딸)을 구하는 데 쓰기를 간절히 바란다(위의 책, 179쪽).”
전원에 직접 지은 자신의 집 앞에 앉아 있는 만년의 니어링. 민음사 제공. 동아일보 자료사진.
왜 존의 편지는 소개하지 않는지, 스콧의 편지는 어떻게 남아있는지에 대해 헬렌은 이렇게 말한다. “스콧은 손으로 썼는데 나는 그 가운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편지들은 종종 타자해 사본을 보관해 놓았다. 스콧은 몇십년 동안 자기에게 배달되는 모든 우편물은 없애 버리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최근에는 대부분 e메일로 편지를 주고받기 때문에 보관하기가 더 편해졌다. ‘보낸 편지함’의 글들을 주기적으로 정리하고 개인 역사의 기록이 될만한 것들은 컴퓨터의 별도 폴더에 복사해 저장해 놓는 것이 좋다. 누군가에게 내가 받은 메일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나의 역사를 기록하고 싶을 때, 술술 몇 장을 추가해 나갈 수 있는 완벽한 사료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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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부국장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