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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인생 레벨은 돈이 결정

입력 | 2023-10-08 10:18:00

[돈의 심리] 돈 안 내는 ‘교수님’ ‘검사님’ 환영 못 받아… 취미·인간관계도 돈 있은 다음 이야기




플라톤의 대표 저서 ‘국가(Politeia)’는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나눈 대화들을 정리한 책이다. 소크라테스가 다른 사람들과 만나 대화한 내용이 주된 텍스트다. 책 첫머리는 소크라테스와 케팔로스 간 대화다. 여기서 케팔로스는 큰 재산을 모으고 이제 죽을 날이 머지않은 노인으로 나온다. 케팔로스는 굉장히 평온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케팔로스가 편하게 노년을 지내는 이유가 큰 재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케팔로스 역시 이런 소크라테스의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케팔로스는 노년이 된 후 가장 중요한 것이 재산 소유라고 말한다. 노년에 돈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와 케팔로스의 의견은 다르지 않았다.

노년에는 무엇보다 돈이 있어야 한다. [GETTYIMAGES]




돈 있어야 노년이 평안

소크라테스나 케팔로스나 돈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본 것은 아니다. 좀 더 중요한 것은 갖고 있는 성격, 즉 성격이 착한가 나쁜가다. 성격이 나쁜 사람은 돈이 있건 없건 노년이 어렵다. 또한 가족관계가 어그러지고,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노년이 된 후 더 힘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젊을 때도 마음이 힘들다.

문제는 착한 사람이다. 착한 사람이라고 다 노년이 편하지는 않다. 착해도 가난하면 노년이 힘들다. 착하면서 돈이 있을 때 비로소 평안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 케팔로스는 노년에 돈이 가장 중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이가 들어 죽을 날이 가까워 오면 자기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이때 가장 두려운 것이 누구에게 빚진 상태로 죽는 일이다. 신에게 제물을 빚지든, 타인에게 돈을 빚지든, 또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었지만 갚지 못해 빚지든 빚을 진 채로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죽기 전 이 세상에서 진 빚을 다 갚기를 원한다. 이럴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 돈이다. 세상에 진 빚을 갚고 죽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아직 케팔로스처럼 나이가 들지는 않아서 노인이 됐을 때 돈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질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더는 소득 행위를 하지 않는 은퇴자라서 은퇴 후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는 말할 수 있다. 은퇴 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바로 돈이다. 은퇴하거나 나이 들어 잘 지내려면 무엇이 중요한지에 관한 연구는 많다. 우선 나이 든 자들의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다른 사람과 관계다. 친구가 있고 같이 어울릴 사람이 많으면 행복하다. 가족이나 친지와 잘 지내도 행복하다. 다른 사람과 얼마나 원활히 지내는지가 노년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많은 연구가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취미도 중요하다. 은퇴 후 할 일이 하나도 없으면 힘들어진다. 취미 삼아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노년이 평안하다. 건강도 중요하다. 아무리 친구가 많고 취미 활동을 한다 해도 건강이 나쁘면 의미 없다. 건강해야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고 취미 활동도 할 수 있다.

돈도 중요하다. 인생의 3대 불안으로 어려서 출세하는 것, 중년에 배우자를 잃는 것, 노년에 가난한 것을 들 수 있다. 젊어서는 가난해도 앞으로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지만, 은퇴한 노년은 가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청년이나 중년에 잘살았더라도 노년에 가난해지면 행복을 느끼기 어렵다. 노년에 행복하려면 다른 사람과 관계, 취미, 건강, 돈 등이 필요하다. 돈은 은퇴 후 필요한 여러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은 조금 다르다. 일단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다른 사람과 관계, 취미, 건강은 돈이 있은 다음 이야기다.



인간관계에 큰 영향 미치는 돈


은퇴 후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 어울리면 좋다. 그건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친구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려면 돈이 필요하다. 친구들끼리 길거리에서 만나 이야기만 하다가 헤어질 수는 없지 않은가. 커피숍에 들어가든지, 같이 식사하든지, 술을 마시든지, 당구를 치든지, 등산을 하든지 뭔가 활동을 같이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활동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이 있는 친구가 돈이 없는 친구를 위해 돈을 대주면 되지 않나. 물론 커피 값, 식사비는 낼 수 있다. 하지만 골프비까지 대신 내주는 건 어렵다. 여행비를 대주면서 같이 가는 것도 무리다. 처음에는 돈이 없어도 같이 어울릴 수 있다. 그런데 어느 한쪽에만 부담이 가는 만남이 10번, 20번을 넘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돈을 내는 친구가 더는 돈을 낼 수 없다고 말하게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계속 받기만 하는 친구가 어울리기를 힘들어한다.

친구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관계도 마찬가지다. 돈이 있으면 사회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이것이 불가능하다. 설령 만난다 해도 계속 어울리기가 어렵다. 은퇴 후 사회적 인간관계를 얼마나 잘 맺는지가 행복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인간관계 유지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돈이다.

은퇴 후 취미를 갖는 것도 마찬가지다. 뭔가 새로운 취미를 시도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사진 찍기처럼 원래 돈이 많이 필요한 취미는 말할 것도 없고, 독서나 그림 그리기와 같이 돈이 별로 안 든다는 취미도 결국 어느 수준에 이르면 돈이 있어야 한다. 계속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던 사람도 어느 순간이 되면 책을 사서 보관하고 싶어진다. 볼펜이나 연필로 그리기를 계속하던 사람도 어느 순간이 되면 제대로 된 캔버스에 물감 등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진다. 계속 초보 수준에만 머무르면 돈이 들지 않지만, 어느 단계 이상으로 취미가 깊어지면 돈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취미는 자신이 좋아하고 몰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행복을 준다. 취미를 자신이 좋아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돈이 드나 안 드나로 선택한다면 그 취미가 행복을 가져다주기 힘들다. 돈이 있어야 정말로 하고 싶은 취미, 행복을 안겨주는 취미에 뛰어들 수 있다.

은퇴 전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면 좀 다르지 않을까. 돈보다 중요한 다른 무엇이 있지 않을까. 높은 사회적 지위가 주는 안정감은 은퇴 전까지다. 은퇴 후에는 사회적 지위보다 돈이 중요하다. 은퇴하고 처음 얼마 동안은 사회적 지위가 계속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계속 이사님, 교수님, 검사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돈을 안 내는 전무님, 검사님은 필요 없다. 돈 내는 교수님은 환영하지만 돈 안 내는 교수님은 부담스러울 뿐이다. 은퇴자 세계에서는 지위가 별 가치가 없다. 지금 돈이 없으면서 옛날에 어땠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은퇴자에게는 지금 얼마나 돈을 부담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은퇴 전 최대한 돈 모아라


은퇴 전 거의 평생을 학계에서 지냈는데, 학계는 돈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대표적 영역이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돈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항상 돈보다 중요한 그 무엇이 있었다. 그런데 은퇴 후 사람들이 “은퇴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요”라고 물어오면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답한다. 내 입으로 인생에서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때가 오리라고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됐다. 무엇이 중요한지 별로 고민하지도 않고 바로 돈이 중요하다는 답변을 내놓는다. 취미? 인간관계? 물론 중요하지만 그런 것들도 돈이 있은 다음 이야기다.

학생 때는 점수에 따라, 직장인은 직급과 지위에 따라 레벨이 달라진다. 은퇴 후에는 돈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레벨이 달라진다. 만나는 사람, 활동, 취미 등이 모두 돈이 얼마큼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학생 때 성적은 직장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찬가지로 직장에서 어땠느냐는 은퇴 후 별 의미가 없다. 은퇴 후 인생은 리셋된다. 그리고 은퇴 후 삶은 가지고 있는 돈의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니 최대한 돈을 많이 모아두라. 이게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에게 내가 최우선적으로 하는 권유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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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409호에 실렸습니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