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선거 때마다 너무 ‘뉴페이스’에만 집착했던 탓은 아니었을까.” 지난주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끝내 부결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재적 298인, 총투표수 295표, 가결 118표, 부결 175표, 기권 2표로 부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를 열고 당론으로 부결을 결정했다. 뉴스1
아무리 봐도 지도자감은 영 아닌 듯한 두 사람을 필두로, 여야도 법안과 인사, 정책에서 번번이 정면충돌하며 유례없는 정쟁을 이어가는 중이죠. 앞으로도 국정감사에 보궐선거에 총선까지 여야가 부딪힐 일만 남았으니 분위기 반전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월 26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제75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는 모습. 윤 대통령 뒤로 ‘힘에 의한 평화’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동아일보 DB
단식 투쟁 후 입원 치료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0월 6일 오후 건강 문제를 호소하며 80분 만에 재판 종료를 요청한 뒤 국회 본회의장에 깜짝 등장해 임오경 등 민주당 의원들과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뉴시스
윤 대통령이 정치판에 발을 들인 것은 2021년 3월 검찰총장직을 던지면서죠. 정치 경력이 대통령 재임 기간 1년 반을 포함해 3년이 채 안 되는 셈입니다. 평생 검사만 했던 윤 대통령은 재임 초반에는 ‘도어스테핑’ 등 이전 대통령들과 다른 소통을 시도했지만, 결국 ‘주 120시간 근무’, ‘아프리카 비하 발언’ 등 ‘1일 1설화’ 논란을 일으키면서 정치 아마추어로서의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들어서며 ‘도어스테핑’을 하는 모습. 윤 대통령이 새로운 소통을 하겠다며 취임 이틀 차부터 시작했던 도어스테핑은 결국 각종 설화와 논란 속 6개월 만에 중단됐다. 동아일보 DB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경기도지사이던 2021년 7월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개한 14분 11초 분량의 대선 출마 선언 영상. 당시 대선 주자 중 이 대표만 유일하게 영상으로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 유튜브 화면 캡처
그러고 보니 2020년에만 해도 야당이던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 주호영 당시 원내대표가 원 구성을 두고 대치를 벌이다 칩거에 들어갔을 때 민주당 김태년 당시 원내대표가 강원도 고성군의 한 절까지 찾으러 갔던 적도 있었죠. 그때도 물론 여야가 최악의 원 구성 협상을 이어가느라 개원도 못 한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지금처럼 아예 서로 만나지조차 않는 윤석열-이재명 조합보다는 나은 듯합니다.
2020년 6월 강원 고성군 화암사에 칩거 중이던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오른쪽, 당시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을 찾아간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오른쪽에서 세 번째,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과 김영진 의원(오른쪽에서 두 번째, 당시 원내수석부대표)이 절에서 함께 내려오고 있다. 김태년 의원 페이스북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왼쪽)와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당시 원내대표)이 올해 5월 박 의원의 원내대표 선출 직후 국회에서 회동하며 인사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의회정치 복원’을 강조하며 쟁점이 없는 법안은 신속 처리하기로 뜻을 모으고 매주 월요일 식사 회동을 이어왔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 여파로 박 의원이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하면서 여야 협치도 당분간 난항을 겪을 것이란 전망이다. 동아일보 DB
결국 본질에 대한 개혁 없이, 겉으로 보이는 간판만 대충 갈아 끼워 ‘혁신’을 빙자하려던 정치권의 얕은꾀가 스스로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초유의 ‘0선’ 간 대결에서 국민이 기대했던 건 기성 기득권 정치판에 대한 쇄신과 변화였건만, 결과적으로 정치의 기본 ABC조차 무시하는 사람들이 대신 나타나 그나마 남아있던 최소한의 미덕과 관행마저 없애버린 겁니다.
이들의 독주를 제어하고, 제 목소리를 냈어야 할 국회의원 중에 오히려 이들의 인기영합주의에 편승해 ‘행동부대’를 자처하며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기회파’들도 적지 않죠. 오죽하면 박지원 정동영 천정배 등 이미 한참 전 현역에서 물러났어야 할 OB 들마저 “이 정도면 나도 다시 해볼 만하겠다”며 줄줄이 다시 등판하겠습니까. 세대교체를 외치며 등판한 이들이 오히려 세대 역행을 유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겁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