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주 2가지 핵 협박을 들고 나왔다. 하나는 핵순항미사일 발사 성공을 알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33년 만에 핵실험을 재개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푸틴은 “제정신이라면 러시아에 도전 못 한다”고 했다. 반(反)러시아 연대를 펴는 서방을 향한 으름장이다. 동계올림픽의 도시 소치에서 열린 행사장에서 무려 3시간 41분에 걸쳐 한 말이다. 발언 내용도 형식도 세상을 놀라게 했다.
▷푸틴이 꺼내 든 핵순항미사일(부레베스트니크·바다제비)은 미국도 중국도 보유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무기다. 이 미사일은 주입한 연료를 태우며 날아가는 일반 추진체가 아니라 초소형 원자로를 품고 다닌다. 비행 사거리가 무제한에 가깝다. 오늘 발사해도 저공으로 날아다니다가 내년쯤 목표물 주변 방공망이 허술할 때 때리는 식이다. 순항미사일은 탄도미사일보다 비행 속도가 느리고 요격이 쉬워 덜 위협적인 것으로 여겼었다. 유엔이 북한의 탄도미사일만 제재한 것도 이런 이유다. 푸틴의 ‘바다제비’는 패러다임을 바꾸면서 ‘게임 체인저’로 불리게 됐다.
▷핵실험 재개 발언의 파장은 더 넓고 깊다. 러시아는 1990년에 먼저, 미국은 뒤따라 1992년에 핵실험을 중단했다. 핵실험이 더는 필요 없을 정도로 핵탄두를 쌓아놓았던 두 나라는 이때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을 맺었다. 하지만 2000년 의회 비준까지 마친 러시아와 달리 미국은 의회가 비준을 거부했다. 푸틴은 이 점을 거론하듯 “러시아는 더 공정한 세계를 만들겠다”고 했다. 조약이 휴지조각이 되면 북한 핵실험을 규탄할 근거는 줄어들게 된다.
▷전문가들은 푸틴의 미치광이(Madman)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나 푸틴은 광기에 휩싸여 정상 대화가 어렵다. 내가 바라는 걸 쥐여줘야 한다’고 생각해 달라는 것이다. 50년 전 베트남전쟁을 끝내고 싶은 닉슨 미국 대통령이 썼던 방식이다. 실제로 푸틴은 광기 어린 발언과 이성적 발언을 뒤섞고 있다. 지난주에도 “핵무기란 국가 존립을 위협당할 때 방어적으로만 쓴다”는 핵 독트린을 바꿀 뜻이 없다고 했다. 핵실험금지조약 비준 파기, 핵 어뢰와 미사일 실험 지속, 시베리아 핵실험 등 러시아 전문가들이 꼽는 ‘미치광이’ 시나리오는 끝이 없다. 위험천만한 푸틴을 전 세계는 당분간 지켜보기만 할 수밖에 없게 됐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