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분쟁 개입 꺼려… 다극화 가속 中-러, 아프리카 등서 영향력 확대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한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갈등, 아프리카 국가의 잇단 쿠데타, 중국과 대만 갈등, 중국과 인도의 국경 분쟁 등으로 전 세계가 상시 분쟁 지대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이 급부상하고 미국은 이런 중국 견제에 치중하는 데다, 러시아가 옛 소련권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는 등 주요 강대국의 역학관계 변화가 이런 ‘분쟁 도미노’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미국은 ‘아시아로의 전환(pivot to Asia)’을 외친 버락 오바마 행정부 이후 조 바이든 현 행정부까지 중국을 유일한 경쟁자로 지목하며 중동 등 세계 각국의 분쟁에 대한 개입을 줄여왔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잇따른 실패로 미 여론이 악화하자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경향이 커졌고 중국 견제만으로도 바빴던 탓이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튀르키예(터키) 등 중동 주요국은 미국이 없는 중동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서방의 전방위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는 옛 소련 국가의 갈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아제르바이잔은 자국 영토이나 그간 아르메니아가 실효 지배했던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점령했다. 이곳에 평화유지군을 주둔시켜 양측 분쟁을 조율해 온 러시아는 아제르바이잔의 행보를 사실상 묵인했다. 우크라이나 전쟁만으로도 바빠 이 지역 분쟁까지 대처할 여력이 없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국은 아시아 주요국과도 사사건건 갈등을 빚고 있다. 중국이 언제든 대만을 침공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으며 국경 분쟁 중인 인도와의 갈등도 격화하고 있다. 중국은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주요국과도 남중국해를 두고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는 “각국 분쟁의 ‘심판’ 역할을 했던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직접 ‘선수’로 나서면서 힘의 공백이 가속화했다”고 진단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