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정치부 차장
“우리가 선거 때마다 너무 ‘뉴페이스’에 집착했던 탓은 아닐까.” 지난주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끝내 부결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였다는 20대 대선의 후폭풍이 1년 반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필두로 여야는 2022년 3월 이후 법안과 인사, 정책에서 번번이 정면충돌하며 유례없는 정쟁을 이어가는 중이다. 앞으로도 국정감사에, 보궐선거에, 총선까지 여야가 부딪칠 일만 남았으니 분위기 반전을 기대하긴 어려울 듯하다.
요즘 원로 정치인들을 만나보면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0선(選) 출신이 나란히 여야 대선 후보가 된 뒤로 한국 정치판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공통된 우려를 한다. 정치권이 선거에 임박해서야 부랴부랴 ‘세대교체’와 ‘물갈이’를 외치며 새 얼굴 찾기에만 급급했던 탓에 준비가 전혀 안 된 사람들을 무리하게 간판으로 내세웠고, 그 결과가 한국 정치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거다.
이들이 등판한 이후 정치판은 점점 양극단을 향해 달리고 있다. 여야 모두 남은 건 30% 안팎의 강성 지지층뿐이고 ‘양쪽 다 싫다’는 무당층 비율이 여야 지지율과 비슷한 수준이다. 국회에선 기본적인 협치의 룰마저 사라진 채 의회정치가 완전히 실종됐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원내대표든, 상임위원장이든 서로 협상하다가 파행이 되더라도, 어떻게든 다시 만나 술잔이라도 기울이며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여야 간 관례이자 국회의 전통이었는데 지금은 경쟁하듯 ‘보이콧’부터 해버린다”며 “정치가 그렇게 자기 것만 얻어가는 과정이 아닌데 분명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본질에 대한 쇄신 없이 간판만 대충 갈아 끼워 ‘혁신’을 빙자하려던 정치권의 얕은꾀가 스스로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초유의 ‘0선’ 간 대결에서 국민이 기대했던 건 기성 기득권 정치판에 대한 개혁과 변화였건만, 정치의 기본 ABC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신 나타나 그나마 이 바닥에 남아 있던 최소한의 미덕과 관행마저 없애버린 거다. 이들의 폭주를 막고 제 목소리를 냈어야 할 국회의원 중에 오히려 이들의 인기영합주의에 편승해 행동부대를 자처한 기회주의자도 수두룩하다.
한 야권 인사는 “세대를 교체하고 청년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결국 뽑은 게 김남국 아니냐”며 “오로지 나이로만, 신선함으로만 판단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게 지난 총선과 대선 결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했다. 우리가 다음 선거 때는 겉으로만 보이는 변화에 현혹되지 말고 제대로 된 사람을 찾고 응원해야 하는 이유다.
김지현 정치부 차장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