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깃집이나 횟집 메뉴판에서 바뀐 건 가격만이 아니다. 메뉴판 구석에 ‘쌈채소 리필은 한 번만 가능’ ‘상추·깻잎 리필에 3000원’ 등을 써 붙인 식당이 갈수록 늘고 있다. 여름 성수기와 추석 연휴를 지나고도 고공 행진하는 채소값 때문이다. 청상추 100g이 1821원으로 작년 이맘때보다 50% 넘게 뛰었고, 같은 양의 깻잎은 3165원으로 15% 올랐다(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6일 소매가 기준). 국산 삼겹살 100g이 2700원대에 판매되고 있으니 깻잎이 삼겹살보다 비싸진 것이다. “삼겹살로 깻잎 싸먹겠다”는 얘기가 나올 판이다.
▷과일값도 다르지 않다. 추석을 앞두고 사과와 배 1개씩 사면 만 원을 넘겼는데 지금은 더 올랐다. 곧 마트에 풀릴 가을 대표 과일 단감은 가락시장 도매가격이 지난해보다 최고 40% 넘게 급등했다. 올해 유독 심했던 폭염·폭우 등 극한 기후의 여파가 여전히 농산물 수급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6, 7월 두 달간 내린 집중호우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236배에 달하는 농지가 침수, 낙과 등의 피해를 입었으니 쉽게 진정될 가격 상승세가 아닌 듯하다.
▷이상 기후가 불러온 농산물 가격 급등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선 오렌지 가격이 연일 뛰고 있다. 최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농축·냉동 오렌지주스 선물(先物) 가격은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허리케인이 강타한 플로리다의 오렌지 생산량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탓이다. 사탕수수 최대 산지인 인도와 브라질의 가뭄으로 설탕 선물 가격도 12년 만에 최고가를 찍었다. 남유럽의 전례 없는 폭염과 가뭄으로 올리브 수확이 급감하면서 국제 올리브유 가격은 1년 새 2배 넘게 치솟았다.
▷올 7월 영국 BBC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기후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를 처음 소개했는데, 불과 몇 달 새 우리 밥상을 위협하는 최대 요인이 됐다. 이상 기후가 농산물 작황 부진으로 이어져 식품물가를 끌어올리고 전체 물가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2035년이면 기후 변화가 세계 식품물가 상승률을 최대 3.23%포인트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무분별한 탄소 배출이 지구 온도뿐만 아니라 물가까지 끌어올리는 기후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