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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 직후 미어터지다 1년 만에 한산해진 청와대

입력 | 2023-10-10 11:48:03

지난해 12월 정부가 영빈관 재사용을 결정하면서 최근 영빈관 관람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hi__sun 네이버 블로그 캡처]

5월 31일 오전 9시쯤 기자가 찾아간 청와대는 개방 초기와 달리 관람객이 많지 않았다. [이슬아 기자]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다 하니… 그냥 벤치에나 앉아 있다 가려고요.”

5월 31일 오전 9시쯤 청와대를 찾은 서울 관악구민 양 모 씨(64)는 청와대 본관 내부 관람이 불가하다는 안내 직원의 말에 적잖이 실망했다. 청와대 건물 중 내부까지 관람이 가능한 곳은 본관과 영빈관 정도인데, 5월 한 달간 본관 내부 관람이 불가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방문한 탓이다. 양 씨는 “홈페이지에 공사 중이라고 안내를 해놨다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며 “영빈관은 보안 때문에 언제 개방이 되고 안 되는지 이곳 직원들도 직전에야 알게 된다 하더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9시 30분쯤 청와대에 도착한 베트남 단체 관광객도 본관 앞에서 입장이 가로막히자 자신들을 인솔하는 여행 가이드를 향해 “Why(왜)?”를 연발했다.

관람객 정원 늘렸는데… 썰렁한 청와대

최근 개방 1주년을 맞은 청와대를 둘러싸고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당초 정부는 청와대를 개방하면 연간 경복궁 방문객 수준인 약 300만 명이 찾아와 관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관람객 수는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청와대 관람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개방 초기보다 상당히 떨어진 상태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 따르면 청와대는 현재 예약 발권 8000명, 현장 발권 2000명으로 일일 관람객을 최대 1만 명까지 받고 있다. 지난해 5월과 올해 4월 두 차례에 걸쳐 관람객 정원을 늘려 기존 3만9000명에서 5만 명으로 그 수를 상향한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공개된 청와대를 직접 방문하고자 하는 국민적 열기를 고려한 조치다. 하지만 5월 31일 찾아간 청와대는 “오늘은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비롯해 단체 관람객이 꽤 있는 편”이라는 한 직원의 말에도 한산해 보였다.

5개월 중 100일 넘게 닫힌 영빈관

이 같은 관심도 하락은 청와대 관람 예약 현황에 그대로 나타난다. 청와대는 예약 발권 8000명을 각각 개인 4700명, 단체 2000명, 만 65세 이상·장애인·외국인·국가보훈대상자 1300명으로 할당했는데, 5월 30일 오후 3시 30분 기준으로 가장 많은 예약을 받는 개인은 잔여석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또 문체부 ‘청와대 월별 관람객 통계’에 따르면 5월 한 달간 청와대를 찾은 관람객 수는 20만9125명이다(그래프 참조). 개방 직후 월 60만 명에 육박하는 관람객이 방문한 것에 비해서는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는 추운 날씨까지 겹치면서 관람객 수가 4개월 내내 월 10만 명대에 머물렀다.

개방 초기 ‘특수 효과’가 지속되지 않는 것은 불가피하다 해도, 정부 의지로 충분히 개선 가능한 관람 서비스의 질이 낮다는 점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청와대 본관은 5월 11~13일 내부 공사를 진행했다. 이 기간 청와대 관람객의 본관 내부 출입이 전면 통제됐다. 하지만 이 사실은 사전에 관람객들에게 충분히 고지되지 않았다. 공지사항이 정식 게시물이 아닌 홈페이지 팝업창으로만 안내돼 5월 31일에도 공사 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청와대를 찾은 개인 및 단체 관람객이 다수였다. 학교 수학여행으로 청와대를 찾은 한 학생은 청와대 관람 후기를 묻자 “그냥 큰 공원이나 다름없는 것 같다”고 평했다.

영빈관의 경우 지난해 12월 정부가 돌연 재사용을 결정하면서 관람에 불편을 빚고 있다. 당시 대통령실은 “관람객 불편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청와대 장소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현장 반응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청와대는 영빈관 관람 가능 날짜를 따로 공지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 일정은 국가 보안 사항이기 때문이다. 이에 관람객들은 예약 당일 청와대를 방문한 뒤에야 영빈관 관람이 가능한지 여부를 알 수 있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영빈관을 총 80일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 준비 및 철거 기간까지 합하면 100일 넘게 영빈관을 관람할 수 없었던 셈이다. 5월 31일에도 영빈관 관람은 불가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시절 문체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을 통해 “청와대를 개방하면 연간 2000억 원 경제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 추산에는 연간 경복궁 방문객 수인 300만 명이 모두 청와대를 관람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또 경복궁 방문객 1명이 인근 이건희 컬렉션을 방문해 평균적으로 지출하는 2만3000원을 청와대 근처에서도 동일하게 소비한다고 전제했다.

“여러 번 찾을 명소되긴 어려울 수도”

하지만 먹을 것 없는 잔치에서 손님은 떠나기 마련이다. 1~5월 청와대 월평균 관람객 수(16만2957명)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연간 청와대 관람객은 195만5484명에 불과할 전망이다. 인근 상인들도 “매출 증대 효과는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근처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A 씨는 “버스를 대절해 오는 단체 관람객은 좀 있을지 몰라도 실제 상권으로 흘러드는 개인 관람객은 이제 거의 없는 걸로 안다”며 “매출 면에서 좋아진 건 없다”고 설명했다. 인근 카페 사장 B 씨도 “(청와대) 개방 초기에는 그래도 손님이 좀 늘었지만 이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청와대 개방에 따른 경제효과 및 편익 추산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지난해 12월 “청와대 개방에 따른 경제효과를 추산한 바 있느냐”는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의 질의에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문체부나 문화재청에서 추산을 의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까지도 한국문화관광연구원과 문체부 등 유관기관은 경제효과나 편익을 추산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체부는 4월 10일 부랴부랴 역대 대통령 특별 전시 등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포함한 ‘청와대 운영 기본방향’을 발표했다. 건물 내부 관람이 자주 가로막히고 국민이 청와대를 찾을 유인이 점점 떨어지는 데 따른 대책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성급한 개방이 문제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안창모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는 “청와대를 서둘러 개방한 건 그에 따른 부작용보다 이익이 더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텐데, 그렇다면 1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실무적인 보완이 충분히 이뤄졌어야 한다”며 “특히 영빈관의 경우 정부 행사 등에 다시 활용하기로 결정할 수는 있지만 관련 설명이 불충분했던 것은 물론, 국민 시각에서는 개방 의미에 대해 고개가 갸웃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초기에는 청와대를 공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목이 집중될 수 있었다”며 “그러나 1년이 지난 시점에도 관람에 제약이 많고 공간 특성을 살린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준다면 청와대가 여러 번 찾아올 만한 명소로 자리매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