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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금리는 700년 동안 하락해왔다. 그럼 앞으로는?[딥다이브]

입력 | 2023-10-11 10:00:00


금융시장 관심이 온통 ‘금리가 얼마나 더 오를까’에 쏠려있습니다. ‘이제 고금리가 뉴노멀(New normal)’이란 기사도, “금리 7%대 시대가 온다”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의 경고도 부쩍 자주 보이는데요.

4.8%를 넘어선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연말까지 얼마나 더 오를 것인가가 투자자들의 최대 관심거리인 상황. 그래서 오늘 금리 방향에 대한 이야기 좀 해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궁금한 앞으로 몇 달, 또는 몇 년의 전망이 주제가 아닙니다. 좀 많이 오랜 기간, 즉 지난 700여 년에 걸친 채권금리의 역사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역사적으로  채권금리는 하락해왔다. 무려 700년 동안. 그럼 지금은? 그리고 앞으로는? 게티이미지

*이 기사는 10월 1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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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년에 걸친 실질금리 하락
채권금리는 1311년부터 꾸준히 하락해왔습니다. 그것도 아주 규칙적으로.

오늘 소개해드리려는 논문 ‘장기채 실질금리의 장기 추세(Long run trends in long maturity real rates)’의 결론입니다. 지난해 첫 발간 뒤 개정을 거쳐 올해 7월 다시 나온 따끈한 논문인데요.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바바라 로시 바르셀로나경제대학 교수, 폴 슈멜징 보스턴대학 교수의 공저입니다.

무려 1311년부터 2022년까지 711년 동안 선진국 8개국(미국·영국·이탈리아·네덜란드·프랑스·독일·스페인·일본)의 장기채 금리와 인플레이션을 조사해 실질금리(=명목금리-인플레이션율)를 알아봤더니 완만한, 하지만 뚜렷한 하락추세에 있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매년 평균 0.017%포인트, 그러니까 100년에 1.7%포인트씩 하락하는 기울기를 보였는데요. 즉, 저금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트렌드가 아닙니다. 수 세기에 걸쳐 줄곧 있어왔던 일종의 법칙 같은 겁니다.

2022년 발행된 ‘장기채 실질금리의 장기 추세’ 첫번째 버전 논문 속 그래프. 파란선이 장기 추세선이다. 700여 년 전 10%대였던 장기채 실질금리(명목금리-인플레이션율)는 등락이 있긴 하지만 장기 추세로는 하락을 이어가고 있다. 

아니, 그 긴 시간 동안 전쟁과 경제위기, 각종 사건 사고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런 ‘일관된 추세’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요. 잘 와닿지가 않는데요.

논문에 따르면 700년이 넘는 조사 기간 동안 이 직선에 가까운 장기 궤적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벗어난 사건은 딱 두가지뿐이라고 합니다. 하나는 14세기 중반(1346~1353년) 유럽 전역을 휩쓸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사라지게 만든 페스트(흑사병). 다른 하나는 1550년대 후반 유럽을 뒤흔들었던 프랑스·스페인·영국의 잇따른 국가 부도(디폴트) 사태입니다. 이밖의 다른 사건의 경우(예-나폴레옹 전쟁)엔 단기적인 이탈은 있었지만 곧 실질금리가 추세선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중앙은행의 도입(1914년 미국 연방준비제도 설립)과 정교해진 통화정책 도구의 발명(1981년 폴 볼커 시대). 현대 경제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이런 변수들은 실질금리 추세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중앙은행과 경제학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결과가 아닐 수 없죠.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어떻게 쓰든, 돈을 풀든 조이든 어차피 장기 실질금리 추세는 고정돼 있다는 얘기가 되니까요.

중앙은행 설립, 현대적 통화정책 도구의 발명도 실질금리 장기 추세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로 작용하지 못했다. 사진은 미국 워싱턴D.C.의 연준 본부. 연준 홈페이지


이 논문의 기본적인 데이터는 폴 슈멜징 교수가 2019년 발표한 하버드대 박사학위 논문(‘장기 실질금리와 안전자산 트렌드, 1311-2018’)에서 나왔습니다.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각국 기록보관소에 잠들어있던 라틴어로 된 자료까지 파헤쳐서 데이터를 모았는데요. 경제학 컨퍼런스에서 1970년대 이후 고작 40여 년의 데이터를 가지고 ‘금리의 역사’를 논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아서” 연구를 시작했다고 얘기합니다. 금리의 역사를 다시 제대로 쓴 거죠.


금리는 평균으로 돌아간다
이 논문에 따르면 1300년대 10%대였던 장기채 실질금리는 꾸준히 하락해, 최근 100여 년 동안은 1% 안팎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장기 추세 기준으로 실질금리 제로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뜻이죠. 시장금리가 무섭게 뛰고 있는 지금 시점에 이 논문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요?

일단 미국 10년 만기 국채를 기준으로 실질금리를 따져 봅시다. 지난해 내내, 그리고 올해 상반기까지도 실질금리는 마이너스였죠. 국채금리 3% 안팎인데 기대 인플레이션이 5% 수준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10년물 금리가 4.8%대인데, 기대 인플레는 3.2%로 내려와 있습니다. 몇 달 전만 해도 마이너스였던 실질금리가 단숨에 1.6%로 치솟았죠. 그리고 시장에선 금리가 더 크게 뛸 거라며 패닉에 빠져있고요.

금리 방향? 아주 길게 보면 보인다. 약 700년쯤. 게티이미지  

마치 이런 상황이 닥칠 걸 예견이라도 한 듯 논문 저자들은 이렇게 분석합니다. “실질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와 팬데믹(2020년)이 유발한 급격한 하락에서 평균으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역사적 추세로는 글로벌 금리의 하락이 지속됩니다. 즉, 금융위기 이전의 값이 아니라 그보다 완만하게 하락한 추세로 복귀가 이뤄질 겁니다.

실질금리가 다시 올라서 마이너스를 탈출하는 건 당연한데(평균 회귀), 그렇다고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되돌아가진 않을 거란 뜻입니다. 예컨대 다이먼이 언급한 7% 금리 시대 같은 건 웬만큼 인플레이션율이 치솟지 않고서는 어렵단 얘기이죠. RBC(캐나다왕립은행) 자산운용의 수석 전략가 토마스 가레트슨 역시 이 논문 내용을 인용하며 이렇게 해석합니다. “미국과 전 세계의 기준금리가 역사적으로 높은 현재 상황은 금융위기 이후 시대에서 벗어났다기보다는(새로운 ‘뉴노멀’이라기보다는) 일탈일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생산성 좋아지면 금리는 오를까 내릴까

실질금리가 700년 동안 하락한 정확한 이유를 알아내려면 연구가 좀더 필요하다. 게티이미지

이쯤에서 당연히 의문이 생깁니다. 도대체 ‘왜’ 실질금리가 700년 넘게 하락하기만 할까요?

그 답은 아직 잘 모릅니다. 연구자들은 구조적 추세가 있다는 건 확인했지만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다는데요. 유동성 증가와 채무불이행 위험의 감소, 두 가지를 유력한 이유로 짐작하고 있다고만 합니다.

다소 맥 빠지시나요? 대신 중요한 발견이 있습니다. 경제학계에서 정설로 받아지는 것과 달리 ‘생산성 향상’이 실질금리를 끌어올리지 못하더라는 거죠. 오히려 과거 데이터에 따르면 생산성(실질 총생산 증가율)과 실질금리는 반대로 움직여 왔습니다. 생산성은 지난 700년 동안 꾸준히 향상됐는데, 실질금리는 계속 떨어져 온 거죠.

실질금리는 총생산량 증가율과 반대로 움직인다. 인구 증가율과도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고, 대체로 반대 방향에 가까웠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냈던 래리 서머스. 미국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지는 걸 막으려면 정부 지출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오랫동안 펼쳐왔다. 올해 들어서는 IRA법 등으로 미국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리면서 실질 중립금리가 상승해 고금리가 지속될 거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동아일보 DB

이 연구결과가 특히 눈에 띄는 건 최근 힘을 얻고 있는 고금리론을 정면으로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를 비롯한 꽤 많은 경제학자들이 올해 들어 ‘AI 기술 발전과 정부 지출 급증(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으로 구조적 고금리 시대가 올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죠. 이른바 ‘실질 중립금리 상승론’인데요. 적어도 이 주장이 과거 700년의 데이터로는 근거가 없는 겁니다. 폴 슈멜징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 적 있죠. “영국의 GDP 대비 공공지출은 18세기 초엔 8%에서 20세기 후반엔 35%로 높아졌습니다. 실질금리가 하락하는 동안 선진국의 재정지출은 크게 증가했왔죠.”

현대 경제학에서는 의심의 여지 없는 진리로 받아들여지던 주장(생산성 향상→실질금리 상승)이지만 역사적 데이터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경제학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금리·통화정책·경제성장에 대한 기존 이론을 뒤흔드는 역사적 증거의 발견.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로 연결될지 궁금합니다. By.딥다이브

이자율 데이터는 그리스·로마시대는 물론 심지어 바빌로니아 시대 기록도 남아있다고 합니다. 다만 중세시대 자료가 텅 비어있어 연속적인 데이터를 구하기 어려울 뿐이라는데요. 방대한 역사 속 금리 기록의 조각을 한데 모아 퍼즐을 맞춰보니 의외로 단순한 답이 나오더라는 연구 결과가 흥미로워서 소개해드렸습니다. 이래서 역사를 알아야 하는 건가 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면

-1311년부터 2022년까지 8개 선진국의 장기채 실질금리를 집계한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실질금리(=명목금리-기대인플레이션율)의 뚜렷한 장기 하락 추세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1년에 0.017%포인트씩, 그러니까 100년에 1.7%포인트 하락합니다.

-웬만해선 이 장기추세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잠시 일탈할 순 있어도 다시 평균으로 회귀하죠. 중앙은행의 출현과 세계대전, 현대적 통화정책 도구의 발명도 통계적으로 추세를 바꾸지 못했습니다.

-팬데믹으로 추세보다 더 많이 떨어졌던 실질금리가 다시 평균으로 돌아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다시 돌아갈 ‘평균’은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보다는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질금리는 생산성이 향상된다고 올라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떨어질 뿐이죠. 정부지출 확대와 AI 기술 발전이 실질 중립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거란 주장을 역사 데이터는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이 기사는 10월 1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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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